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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od Movies/드라마

<주디> _ 역사상 가장 비참했던 여배우의 가슴 아픈 실화

by 브리즈B 2020. 4. 12.

< 주디, 2019 >

 

감독: 루퍼트 굴드

출연: 르네 젤위거

개요: 드라마, 역사 / 미국 / 인생, 예술, 비참한

 

<오즈의 마법사>의 영원한 '도로시'

시대를 초월한 히트송

'오버 더 레인보우'의 주인공,

20세기 최고의 여배우 주디 갈랜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생애 마지막 무대를

런던에서 준비하는데...

 


 

<주디> 메인 예고편

 


 

" 주디 짚어보기 "


젊었을 적의 주디 갈랜드

  주디 갈랜드는 할리우드의 빛과 어둠을 보여주는 위대한 배우입니다. 이 배우의 삶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듣는 사람이 안타까워할 정도로 비참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1930년대, 아직 인권에 대한 개념이 적었던 시절, 욕심 많은 부모와 무지한 주변인들과 탐욕스러운 사업가가 한 소녀의 인권을 유린하며 만들어낸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는 사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합니다. 모순. 가엾고 슬픈 마음, 희생과 위대한 예술의 찬란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그 모순 앞에 말문이 막히는 걸 느낍니다. 
  주디 갈랜드는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죽은 사람이지만 옛날 영상들을 찾아보면 그녀의 장점이 돋보입니다.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한 춤과 동작들, 아름다운 목소리와 우아한 외모, 스타가 되기 위한 재능을 하늘로부터 받고 태어난 스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뒤에 담긴 슬픔을 생각한다면 비장할 정도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디 갈랜드의 이야기를 짧게나마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네요.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주디 갈랜드

  주디 갈랜드는 1922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태어난 여성으로, 2살 때 가수로 데뷔하고 4살 때 아역 배우로 데뷔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가혹하고 잔인하며 단호한 사람이어서, 어린 주디 갈랜드를 이용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주디 갈랜드는 13살 때에 MGM에 소속되고, 그곳에서 인생의 작품인 <오즈의 마법사>를 찍습니다. 해당 작품은 1939년에 개봉했죠. 이후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이자, '영원한 도로시'로 불리며 살아갔습니다. 50년대에는 <스타 이즈 본>의 원작인 <스타 탄생>의 두 번째 버전에서 주연을 맡게 되며, 역대 <스타 탄생>의 에스더들, 1937년의 자넷 게이노, 1976년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2018년의 레이디 가가(앨리) 중에서 으뜸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주디 갈랜드는 뛰어난 연기력과 탁월한 노래실력을 지닌 천상 연예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5번의 결혼과 마약, 술, 수면제, 수면 부족과 거식증과 불안 등으로 고통받은 인생이었고, 결국 47세의 나이로 쓸쓸히 사망합니다. 헐리우드를 대표한 스타의 불행한 최후였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행하지 않은 적이 없었죠. 영화 <주디>는 바로 주대 갈랜드의 일생 중에서 가장 비극적이었던 두 개의 순간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전기 영화입니다. 13살, 처음으로 <오즈의 마법사>를 찍던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주디 갈랜드가 사망하기 직전, 마지막 런던 콘서트 때 겪은 일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 주의 ※

본 포스팅은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이며 

단순히 제 의견이 틀리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다소 부족하지만

다름을 근거로 한 냉정한 비판은 괜찮으며

본 리뷰에 앞서 영화 내용을 다룰 것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읽어주시기를 권장합니다.




 

" 무지게 너머의 세상을 노래한 상처투성이 소녀 "


집이 없어서 호텔에 전전긍긍하며 사는 주디

  영화는 주디 갈랜드라는 왕년의 스타가 몰락한 후의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원한 도로시라 불리고 있지만 그녀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버렸죠. 게다가 주디 갈랜드는 돈도 없고 집도 없는 상태입니다.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방법은 배웠지만 자산을 관리하고 돈을 벌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은 배우지 못한 이 불행한 중년 여성은 자신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손 놓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세상이 알아주는 주디 갈랜드이지만 정작 그 삶은 무척 비루했습니다. 주디 갈랜드이기 때문에 쉽게 어려움을 고백하기도 힘들고요. 물론 기회는 여전히 있습니다. 런던 콘서트 제안이 그것이죠. 미국에서는 여러 사정으로 여의치 않지만 여전히 영국의 팬들은 주디를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고 주디의 노래를 듣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주디는 미국을 떠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런던은 질색이라는 말도 덧붙이죠. 그 이유는 바로 아이들 때문입니다. 주디에게는 아직 어린 남매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전남편의 집에서 살고 있죠. 오랜만에 아이들을 만난 주디는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에 사무칩니다. 주디 갈랜드 역시 평범한 어머니들처럼 아이들을 애타게 사랑하기 때문이죠.

 

벽장 안에서 아이들을 껴안고 웃는 주디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주디 갈랜드는 아이들의 어머니라기보다는 또래 친구나 언니, 누나 정도로 보입니다. 특히 아이들과 놀자며 작은 벽장 안에 들어가 두 아이를 꼭 끌어안는 모습은 애틋하게 보입니다. 그런 작은 공간마저 가지지 못한 주디 갈랜드의 슬픈 현실, 그리고 아직도 소녀 같은 그녀의 천진함이 처절하게 교차하는 장면이죠. 주디는 결국 런던 콘서트를 감행하기로 결심합니다.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죠. 주디가 아이들에게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집을 사면, 아이들과 같이 살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아이들 앞에서는 눈물의 그렁그렁한 눈으로 환하게 웃는 주디의 얼굴. 무대 아래의 그녀는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 주디 갈랜드가 아닌 도로시 "


런던에서 여러 사람과 교류하는 주디

  그렇게 싫어하는 런던에 도착한 주디. 저는 주디 갈랜드가 영국에 도착해서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는 장면이 가장 흥미롭더군요. 아마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집중한 부분이기도 할 것입니다. 자신이 스타라는 것에 너무나 익숙한 사람. 평생을 스타로 살아온 사람. 그리고 스타가 되기 위해, 아니 인형이 되기 위해 자신을 갉아온 사람이 세상과 교류하는 방식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런던에 도착한 주디는 자신을 보기 위한 관객들의 행렬,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 호텔 직원들의 호의와 현지 스케줄을 도와줄 매니저 등을 만나게 됩니다. 기자들과 관객들 앞에서 보여주는 주디의 매너는 말 그대로 훈련된 모습 그 자체입니다. 터지는 플래시 안에서 주디는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줍니다. 저는 그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르네 젤위거라는 배우가 다르게 보이더군요.

 

런던으로 입성하며 플래시 세례를 받는 주디

  주디의 웃음은 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보인 미소가 그것이죠. 아이들 앞에서 주디는 떨리는 눈동자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견딜 수 없다는 듯 웃어 보입니다. 그 웃음에는 사랑과 불안과 미안함과 걱정,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들 앞에서 미소하는 주디는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 앞에서 주디는 전혀 다르게 웃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눈을 의심했습니다. 전혀 다른 인공적인 미소, 주디는 어떻게 웃어야 자신이 예쁘게 보이는지를 완벽하게 파악한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기자들 앞에서 한껏 준비된 미소를,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과는 전혀 다른 미소를 보여줍니다. 사랑스럽고, 우아하고, 예쁘고, 상냥하면서 매력적인, 말하자면 '도로시의 미소'라 할 수 있죠. 아이들 앞에서 보여준 미소가 엄마의 미소라면 런던에서의 미소는 도로시의 미소입니다. 만들어진 인공적인 미소죠. 르네 젤위거 특유의 눈웃음은 그 미소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합니다. 참 대단한 배우입니다.

 

주디의 런던 매니저 로잘린

  한편 주디는 '관계자'들을 대할 떄 또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로잘린(제시 버클리)과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로잘린은 기계적이고 건조해 보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디에 대한 존중과 호의로 무장한 여성입니다. 그녀는 주디가 문제없이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돕는다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무리 없이 해낼 준비도 되어 있죠. 즉 주디 입장에서 로잘린은 자신을 도와줄 아군이지, 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디는 놀라울 정도로 로잘린에게 정색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처음에는 로잘린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시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오해할 정도로 냉랭한 태도로 일관하더군요. 그리고 영화는 곧 그 답을 보여줍니다. 13세의 주디 갈랜드의 이야기를 연결시켜 보여주는 것이죠.

 

13세 시절의 주디 갈랜드

  13세의 주디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MGM에 들어간 후, 그녀는 혹사에 가까울 정도로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18시간의 노동을 강요받았고, 계약서에 명시된 점심시간 1시간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음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직 어린 소녀였던 주디는 철저하게 통제된 생활 속에서 피폐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었죠. 주디의 어머니는 주디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 이용하는 데에만 혈안이 된 사람입니다. 그녀는 실제로도 주디에게 담배를 가져다줬고, 주디가 잠을 이루지 못하면 수면제를 먹였고, 급기야 성접대까지 했다고 합니다. 천인공노할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의 헐리우드는 인권의 사각지대였습니다. 어린 주디는 어머니와 소속사의 공모된 범죄에 노출된 채 마치 기계처럼 노래하고 춤을 추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주디의 몸과 영혼은 갈가리 찢겨나갔습니다. 도저히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죠.
  누군가는 삶에서 고통 받는 사람을 보며 '담금질'에 비유하곤 합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인간이 더 강해진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건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강철이 아닙니다. 쇠는 달구고 때릴수록 강해지지만 인간은 때리면 약해집니다. 멍이 들고, 상처가 깊어지고, 더 가면 망가져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주기적으로 아파오는 게 사람입니다. 

 

주디와 로잘린

  주디 역시 마찬가지죠. 로잘린은 조디의 어머니와 전혀 다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주디는 본능적일 정도의 거부감을 보인 겁니다. 세상 모두가 나를 이용하고, 세상 모두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덤비는 곳, 주디가 살아가는 세계는 그런 곳이기 때문입니다. 리허설을 거부하는 주디, 저는 그게 프로듀서의 자부심 때문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주디는 대략적인 무대 공간에 대한 정보만 얻고 리허설은 거부하죠. 그리고 영화에 묘사된 주디의 첫 무대를 보며 저는 제 추측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디는 무대에 올라서자 준비된 노래와 춤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역시 주디 갈랜드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 퍼포먼스죠. 하지만 그 춤과 노래에는 슬픔이 어려 있습니다. 어렸을 때 강압적으로, 마치 기계를 대하듯 훈련시킨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음악, 박자에 맞춰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것처럼 기괴하게까지 느껴집니다. 그게 바로 주디 갈랜드라는 만들어진 인형의 정체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리허설을 하지 않는 이유도 납득이 갑니다. 어쩌면 주디는 관객이 아닌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노래는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가수로서의 주디 갈랜드는 어떤 의미에서 배우로서의 의미보다 클 수 있습니다. 다만, 주디가 리허설을 거부한 것은 노래와 춤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학대와 강압적인 훈련을 떠올리게 만드는 매개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주디

  타고난 음색과 성량, 재능으로 인해 누구보다도 노래를 잘하지만, 노래를 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부르고 싶지 않은 겁니다. 물론 그냥 자신감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주디 갈랜드라는 스타가 지닌 재능이 너무나 빛나죠. 무대에 선 주디의 모습은 슬프고 초라하고 애처롭게 보입니다.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주디의 정면에서 주디를 보여줍니다. 보통의 관객들이 주디를 바라보는 시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무대를 찍는 것이 아니라 주디를 찍기 때문에, 카메라는 주디의 눈높이에서, 혹은 그보다 살짝 높게 배치합니다. 자연스레 주디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고, 주디의 떨리는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르네 젤위거는 마치 공포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하듯 공포에 질린 표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모두 주디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이기 위한 기법입니다. 그 어떤 음악방송도 이런 구도로 아티스트를 찍지 않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음영이 잘 들어간 옆모습 위주로 찍으며 컷을 교차시키죠. 아티스트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관객을 위해 연출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영화를 보며 주디의 무대가 초라하게 보였다면, 영화는 그 의도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셈이죠. 

 

무대가 끝나고 약에 취하는 주디

  무대가 끝나고 나서 비밀은 풀립니다. 무대 뒤 대기실에 찾아간 로잘린이 본 주디는, 술과 약에 취하고 완전히 무너진 채 울고 있었습니다. 비참하고 초라하죠. 그게 주디 갈랜드의 진짜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무대는 대단했다고 말하는 로잘린에게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주디가 말합니다. "내일도 잘할 수 있을까?" 이제 주디에게 남은 것은 무대밖에 없습니다. 평생을 무대에서 살아온 주디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방법이 무대밖에 없는데, 정작 그녀 자신이 무대로부터 버림받을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그 두려움이 주디로 하여금 자꾸만 무대를 피하게 만듭니다. 언제나 최선의 컨디션으로 올라갈 수는 없는 법이죠. 하지만 주디를 갉아먹는 두려움은 그걸 넘어서버립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제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런 주디를 바라보는 일은 너무 힘들고 아픈 것입니다.

 


 

" 나를 잊지 말아달라는 그녀의 외로운 외침 "


왼쪽은 영화 <주디> 속 르네 젤위거 커플. 오른쪽은 실사 커플.

  저는 이 영화의 전반부, 즉 주디 갈랜드가 첫 런던 콘서트 무대에 오르고, 노래를 선보이고, 백 스테이지에서 무대에 대한 두려움을 피력한 것까지가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사족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후반부를 긍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디 갈랜드라는 역사적인 인물을 그린 전기 영화 치고는 지나치게 평범합니다. 주디의 새 남자 친구는 주디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인물입니다. 그 친구는 주디에게 분명 다른 목적으로 다가오는 사람이죠. 하지만 주디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주디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괜찮다는 식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너무나 외롭고 고독해서, 자기 편이 필요해서, 자기를 이용한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해준다면 마음을 줍니다. 그게 바로 주디가 다섯 번이나 결혼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 비참함이 사무치게 느껴집니다.

 

주디를 집에 초대하는 동성애 커플

  영화 중반에는 남자 둘이 등장합니다. 마침 갈 곳이 없었던 주디는 자신의 팬이라고 찾아온 두 사람을 만나서 에스코트를 부탁합니다. 둘은 한 남성의 집으로 주디를 안내하고 거기에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죠. 주디가 노래를 불러주자 남자는 눈물을 흘립니다. 이 두 남자의 역할은 단순히 주디를 숭배하는 팬이 아닙니다. 주디는 원래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도 유명한 스타였고, 뮤지컬은 그 당시 동성애자들의 지지를 받는 공연이었습니다. 그 두 샤람은 60년대에 동성애를 하는 커플이었습니다. 주디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는 것도 그런 이유죠. 누구보다도 상처 입은 주디가 다른 상처 입은 영혼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장면이죠.

 

MGM 설립자 루이와 13세의 주디

  가장 슬프게 느껴진 것은 엔딩입니다. 엔딩에서 주디는 스스로 도로시의 대표곡 <Over the rainbow>를 부르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둡니다. 그 연약함을 무대 위에서 모두 보여줍니다. 르네 젤위거는 인터뷰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주디 갈랜드는 마침내 역경을 극복한 것"이라고요. 단순히 팬들이 노래를 합창해주어서 감동해서 이겨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르네 젤위거는 그 스스로도 할리우드 스타이기 때문에, 밖에서 바라보는 우리보다 훨씬 주디 갈랜드를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주디가 무대에 설 용기를 가진 것,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여긴 것은 아닐까요?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그토록 자신을 괴롭힌 도로시와 마주했으니까요. "나를 잊지 말아달라"고 말하며 주디 갈랜드는 떠났습니다. 그녀는 영원한 도로시가 되어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그녀의 불행한 삶이 언급됩니다. 영화에서 MGM의 설립자 루이 B 메이어가 주디에게 가스 라이팅(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상대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정신적으로 지배하려는 행위)을 할 때, '평범한 삶'을 살고 싶으냐고 협박합니다. 주디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노래하고 그녀가 사랑받아야 하는 것은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타 주디 갈랜드

  13살의 주디는 엄격하게 통제당하는 생활 중에, 주변의 만류와 억압을 뚫고 기어이 햄버거를 입에 넣어서 한입 크게 베어 먹습니다. 너무나 배고팠고, 햄버거는 너무나 맛있어 보였고, 참을 수 없었죠. 하지만 입에 넣자마자, 아무 맛도 없었습니다. 거짓말처럼. 47세의 주디는 그렇게 싫어하던 로잘린이 사준 케이크를 입에 넣습니다. 이번에는 주디가 스스로를 통제하고 괴롭히고 있었죠. 얼마 만에 음식을 먹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케이크는 거짓말처럼 맛있었습니다. 맛있다며 웃는 주디의 미소는 아이들에게 보여주던 바로 그 미소였습니다. 어쩌면 맛있다고 웃어야 했을 13살의 도로시가 보여줘야 했던 그 미소였겠죠. 13살의 주디 곁의 거짓된 관계는 아무런 맛도 없지만, 47세의 주디가 만난 평범한 사람들은 너무나 맛있는 거죠. 이제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Over the rainbow>를 듣는 자세와 느낌이 이전과는 다를 겁니다. 무지개 너머의 세상을 노래한 영원한 도로시를 위해 이만 리뷰를 마칩니다. 

 

한 줄 평가: 무지개 너머로 사라진 스타, 그 별빛을 기억하는 애잔한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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