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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시 쉬었다 가세요"
The Good Movies/드라마

<결혼 이야기> _ 진심이 그대 가슴 속에 사무칠 때까지

by 브리즈B 2020. 3. 11.

 

< 결혼 이야기, 2019 >

 

감독: 노아 바움백

출연: 아담 드라이버, 스칼렛 요한슨

개요: 드라마 / 미국 / 연기력, 이별, 안타까운

 

부부로서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끝내 마음이 멀어져 버린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

파경을 맞았지만,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 가족을

예리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 결혼 이야기 짚어보기 "


  세상에 관객을 만족할만한 폭넓은 재미를 선사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유형의 영화들 중 대부분은 재미를 사수하느라 영화 고유의 맵시를 놓쳐 그로 인해 깊이감이 현저히 부족한 결과물을 낳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는 적은 비율의 후자에 해당하는, 모두가 즐길 법 한 보편적 재미가 있으면서 제작자 고유의 개성과 미적인 완성도까지 두루 갖춘 훌륭한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느 한군데가 별로 흠이 없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흔히 말하는 연출, 연기, 각본 이 세 개의 요소들이 완벽한 균형을 이뤄 밸런스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지요. 소소한 재미를 주며 극에 힘을 가하는 코미디부터 갈등의 정점에 이르러 극의 방점을 찍는 부분까지, 연출은 옳고 그름을 따질 것 없을 만큼 안정적이며 이를 지탱하는 배우들의 연기조차 훌륭합니다. 아담 드라이버, 스칼렛 요한슨, 로라 던 셋 모두의 연기가 인상적인 만큼 어느 순간 각 캐릭터에게 쉽게 몰입되고 뭉클해집니다. 그만큼 현실적으로 다가와 관객들이 한 번쯤 영화 속 부부의 이야기를 자신의 후일에 만약 나타날법한 이야기로 상상해 볼 것입니다. 노아 바움백 감독은 인물에 동화된 관객들을 이끌고 말하고자 하는 것을 가슴속에 사무칩니다.

 


※ 주의 ※

본 포스팅은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이며 

단순히 제 의견이 틀리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다소 부족하지만

다름을 근거로 한 냉정한 비판은 괜찮으며

본 리뷰에 앞서 영화 내용을 다룰 것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읽어주시기를 권장합니다.

 

" 법이 넘볼 수 없는 인생 "


 

법정에서 양측 변호사들이 열변을 토로하고 있다

  <결혼 이야기>에서 제일 좋은 인상을 주는 건 아무래도 감독의 차갑고도 뭉클한 시선과 태도가 담긴 각본입니다. 어느 한 인물에 무게 추를 싣지 않은 채로 두 인물 모두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려 깊은 감성도 인상적이지만 <결혼 이야기>의 각본은 양측의 추함과 갈등을 유도하는 사법의 맹점을 냉철하게 비판할 줄 아는 지성도 돋보이지요. 법정에서 양측의 변호사가 격렬히 대립하는 장면에서, 부부는 서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합니다. 부부의 결혼생활을 단 1분도 지켜보지 못한 제삼자에 해당하는 법조인들의 유치한 다툼과, 그들이 부부에게 종용한 비겁한 폭로가 있을 뿐이고 이로 인해 서로의 비겁함에 실망한 부부끼리 시선의 교환만이 허망하게 있을 뿐입니다. 55대 45. 노라는 이 수치를 들먹이며 니콜에게 승리를 자축합니다. 하지만 유치하고도 추잡한 진흙탕 싸움을 통해 쟁취한 이 10%의 우위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도의적인 차원에서 서로에게 이상적으로 마무리되어야 할 이혼을 자신들의 자존심을 위해 승패 싸움의 제대로 끌고 가는 사법에 대하여 영화는 냉랭한 태도를 취합니다.

 

 

왼쪽에 앉은 법조인이 불과 하루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양육권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한다

  사법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팽배한 시나리오를 받쳐주는 여러 설정과 연출도 인상적입니다. 극 중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한 찰리는 사소하게 한 번, 크게 한 번 도합 총 두 번의 부상을 당하지요. 여기서 중요한 건 그가 다치는 원인입니다. 영화의 중반 찰리가 차량 시트를 점검하다 손이 베일 때나, 법에 의해 의무로 가정방문하여 부자의 관계를 지켜보는 선생 앞에서 칼에 크게 외상을 입을 때나 언제나 찰리 곁에 함께 하는 건 법의 허점입니다. 전자의 경우엔 차량 시트에 관한 법의 쓸데없음과 번거로움이, 그리고 후자의 경우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단 몇 시간의 관찰만으로 판단을 짓는 법의 모순이 개입해 찰리에게 상해를 입힙니다.

 


 

" 결혼을 앞세운 연극 무대 "


 

신혼 시절, 행복했던 순간이 영화 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초반에 이혼을 결심한 찰리와 니콜이 집에 있는 장면에서 허영심이 드러나 보였습니다. 가정이 같이 꾸려나가는 집은 대체로 안정과 화목을 추구하지요. 하지만 둘 다 밖에 있을 때, 서로 물고 뜯는 것에 안달이 났지요. 찰리와 니콜이 같이 집에 있는 장면을 유심히 보면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영화 오프닝 중에 니콜이 찰리의 장점을 말하는 내레이션이 깔리고 다음에 찰리가 니콜의 장점을 말하는 내레이션이 이어집니다. 내레이션 도중에는 찰리와 니콜이 정말 화목해 보였던 결혼 초의 과거 장면이 회상하는 것처럼 나옵니다. 특히 거실 혹은 응접실에서 트럼펫 하나 가지고 행복해하는 표정은 정말 순수할 정도이지요. 

 

 

왼쪽부터 니콜, 헨리 그리고 찰리가 나란히 누워 있다

  하지만 영화는 오프닝을 짧게 끝내고 이혼 과정을 주로 다룹니다. 그중에서 찰리와 니콜이 집에 같이 있는 장면은 크게 세 개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는 찰리와 니콜 그리고 아들 헨리가 다 같이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 찰리와 니콜 사이에 거리감이 아주 멀게 느껴집니다. 두 번째는 니콜의 연극이 끝난 뒤, 집 거실에서 찰리가 니콜의 연기에 관한 감상을 솔직하게 터놓고 말합니다. 그동안 계속 니콜의 연기가 괜찮다고 말하던 찰리가 처음으로 단점을 줄줄이 읊으면서 니콜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니콜이 거실을 빠져나와 침실로 들어가는 복도 가운데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찰리가 별거하고 있는 집에 니콜이 찾아와 극의 절정에 이르는 순간입니다. 두 사람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욕설과 악담을 서슴지 않고 내뱉지요. 이 또한 거실에서 이루어집니다. 

 

 

세 번째 장면. 찰리와 니콜의 분노가 절정에 다다른 후 서로 흐느낀다

  제가 봤을 때, 앞서 말한 첫 번째와 두 번째 장면 속 부부가 같이 있는 공간은 연극 무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부부는 서로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결혼이란 연극을 해 온 것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첫 번째 장면 같은 경우에, 보통 일상에선 부부가 자식에게 동화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기쁨이 같이 하지만 찰리와 니콜은 어딘가 공허해 보입니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밤중에 찰리와 니콜이 가식적인 말을 주고받지요. 니콜은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거실이란 연극무대를 내려와서야 비로소 감정을 드러내고 맙니다. 세 번째 장면에서 찰리가 별거 중인 집은 더 이상 연극 무대가 아닌 현실 속입니다. 연극적인 공간에서 현실의 공간에 내던져진 찰리와 니콜은 서로의 진심을 대면하게 되지요. 이 시점에서의 니콜은 연극을 그만둔 때입니다. 또한 찰리도 잠시 연극 일을 중단하던 시점이지요. 즉, 세 번째 장면 속 거실은 중의적인 의미의 연극 무대가 부서지고 난 뒤에 드러난 진실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진정한 결혼 이야기 "


 

  간혹 이런 영화들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영화의 우수함이 납득 가는데 도통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 영화들. 하지만 감히 추측하건대 <결혼 이야기>는 대다수의 관객에게 그렇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결혼 이야기>에는 만든 이의 따스한 시선과 진심 어린 태도가 깃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다소 궁금해지는 지점이 있는데요. 부부의 좋았던 시절은 단 두 번의 오프닝 몽타주로 요약해 버리며 추한 진흙탕 싸움을 연상케 하는 이혼의 과정에 러닝타임 대부분을 할애하는 영화의 제목이 왜 <이혼 이야기>, 혹은 <파경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 이야기>인가. 
  이는 말하자면 노아 바움백 감독은 이혼을 결혼과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혼까지 결혼의 연장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즉, 이건 어떻게 결혼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지요. 니콜은 이혼을 결심하는 순간 결혼은 끝난 것이라 믿으며 상황을 방치하고 법조인들에게 모든 것을 전임합니다. (물론 이들의 결혼생활 전체를 따지자면 전혀 다른 얘기겠지만) 최소한 우리가 보는 영화의 시간대에선 이것이 파국의 시초이자 출발점입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니콜은 그제야 찰리의 집에 찾아가 서로 피 튀기는 언쟁을 벌이지요. 겉보기에 합리적인 선택은 법에 의존하기로 한 니콜의 첫 번째 선택이지만 서로의 추한 속내를 모두 드러낸 두 번째 말다툼이야말로 진정 그들에게 필요했던 선택이지요. 어디까지나 이혼은 법의 판결 하에 진행되겠지만 둘에겐 어른으로서 마땅히 보여야 할 태도와 책무가 있습니다. 이혼이 누군가에겐 새 출발이 되고 또 누군가에겐 후회가 될지라도 둘은 법의 판결이 있기 이전에 서로에 맺힌 감정의 응어리를 부부의 차원에서 해결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상황이 어찌 됐든 찰리와 니콜은 수고스러운 어른의 과정을 거쳤기에 신발 한쪽 묶어주고 쿨하게 돌아설 수 있는 미련 없는 사이로 남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지요.
  찰리와 니콜은 서로에게 좋은 아내이지 못했으며 좋은 남편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과 나에게 좋은 사람은 별개의 문제이기에 이를 뒤늦게 자각한 괜찮은 사람들 간의 파경은 빈번합니다. 이 상황에서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감싸주는 척 악행을 종용하는 사법체제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도의적인 차원에서 이상적인 마무리를 모색하는 것이 다라 봅니다. 어른스러운 모색의 과정을 마쳐야 비로소 후회 없는 마음가짐을 선물 받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 줄 평가: 멀지만 가깝게 느껴지고 가까우면 마주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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