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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시 쉬었다 가세요"
The Good Movies/드라마

<마스터> _ 인간이라는 수수께끼

by 브리즈B 2020. 2. 29.

 < 마스터 Master, 2012 >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와킨 피닉스, 필립 셰이모어 호프만, 에이미 아담스

개요: 드라마 / 미국 / 철학적인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레디(호아킨 피닉스)는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며 살다가

우연히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랭케스터(필립 셰이모어 호프만)를 만나고,

실험대상이자 친구로 그의 가족과 함께 머물게 된다.

 


 

" 마스터 짚어보기 "


  <마스터>라는 영화는 무척이나 슬프면서도, 처연하고, 또 쓸쓸한 데다가 아름답기도 하고,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는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를 다루고 있으며, 이때는 미국이 국가적으로 최강대국으로 성장해 호황기를 기록했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해가 쨍쨍하게 내릴수록 그늘은 더욱 짙어지는 법처럼 번영의 그늘 속에서 미국인들의 불안과 공허 같은 것이 자라나게 됩니다. 이것을 가장 독특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소화해낸 것이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인 것 같습니다.
  감독의 전작 <매그놀리아>, <데어 윌 비 블러드>처럼 <마스터>도 선악의 경계를 지우고 인간의 조건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인물들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내면을 지녔으며 주제는 심오하나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는 점이 있죠. 단, 취향이 맞는다면 예측불허의 항로를 개척하는 흥미진진한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 주의 ※

본 포스팅은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이며 

단순히 제 의견이 틀리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다소 부족하지만

다름을 근거로 한 냉정한 비판은 괜찮으며

본 리뷰에 앞서 영화 내용을 다룰 것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읽어주시기를 권장합니다.

 

" 프레디 퀠 & 랭케스터, 뜻밖의 만남 "


1) 프레디 퀠 (와킨 피닉스)

 

온갖 독한 술을 섞은 폭탄주를 마시고 갑판 위에서 뻗은 프레디.

  이 영화는 프레디 퀠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퀠'이라는 성이 진압, 가라앉힘, 살인, 죽음, 유사한 뜻을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름을 들으면 그 자체로 굉장히 어둡고 무게감 있는 폭력적인 정서가 드러납니다. 한마디로 이 인물은 전쟁의 상처 때문에 일종의 정신질환을 앓는 인물로 나옵니다. 영화 전체를 단순히 보자면 내면이 붕괴된 사람의 이야기나 미친 사람의 이야기로 말할 수도 있을 거고요. 이렇게 정신이 붕괴된 사람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영화화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인간은 어떻게 보면 밑바닥에 놓여있을 때, 정신적인 구원을 바란다고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가 구원을 향한 드라마가 되기에는 프레디의 불안정한 정신이라는 설정 자체가 최적의 조건 속에서 출발한다고 말할 수도 있죠. 
  프레디는 초반에 선실에서 랭케스터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 많은 일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여봤고 자신의 고모와 근친상간을 저질렀습니다. 반면에 도리스를 향한 순수한 사랑의 아픔을 갖고 있어, 병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인물로 비칩니다. 보통 주인공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영화에서 관객은 주인공에게 마음이 갈 수 있는데, 이 영화는 보다 보면 주인공에게 마음이 가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부정적인 에너지가 넘치고 보통 사람의 시선에서 혐오스럽기까지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개인적으로 별로 친구로 지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친구가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서사의 중심에는 프레디가 자리 잡고 있죠. 주인공은 인간이라는 수수께끼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 흥미롭게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마스터> 마지막 장면. 프레디가 바닷가에서 모래 형상 여인과 나란히 누워있다.

  그는 성적인 강박 같은 게 있는 저속한 사람이고 술을 이것저것 섞어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로서 매번 불안정한 상태가 그의 얼굴에서 쉽게 드러납니다. 가정적으로도 프레디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으로 요양원에 있고, 아버지는 술 대문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고모와의 근친상간도 술 마시고 난 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가 되죠.  이 영화에서 랭커스터와 가까워지게 된 것도 프레디가 직접 만들어낸 술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극 초반에 프레디가 사진사로 등장하는데 뭔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느낌도 듭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금방 때려치우고 미국 전역을 떠돕니다.
  이런 설정 속에, 프레디라는 사람이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속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바다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발을 디디고 설 정도의 땅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마지막에 그가 안식을 취하는 것은 바닷가에서 그가 모래로 만들어낸 여인과 함께 눕는 거죠.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치유에 관한 드라마 같기도 하고, 불가능한 성장 드라마 같기도 합니다. 영화는 갈등의 매듭을 풀기 위해 달리는데 <마스터>는 인물의 도약이나 성장을 전혀 드러내지 않습니다. 영화 마지막에서 프레디는 깨달음을 얻었다기보다 깨달음을 포기한 것처럼 보여 쓸쓸함을 줍니다.

 


 

2) 랭케스터 (필립 셰이모어 호프만)

 

선실 내에서 프레디와 처음으로 만났던 때의 랭케스터

  랭케스터는 즉흥적인 프레디와 달리 한 곳에 정착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작가, 의사, 핵물리학자, 이론 철학자이며 아내와 아들이 있고 신흥 종교단체 "코즈"의 교주입니다. 다소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고 냉정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프레디와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랭케스터 자신도 술을 좋아하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사람이 등한시하는 독한 술이죠. 사소한 것 같지만 관계 맺음에 있어서 출발은 항상 사소한 것에서부터 동질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랭케스터는 영화에서 묘사한 바탕에 따르면 자신의 아들과 딱히 친해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에 관계가 서먹한 부자 관계처럼 아버지와 아들은 깊은 관계가 아닌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야 아들은 "코즈"의 종교를 맹신하지 않고 가족이니까 적당히 믿어주는 척을 하죠. 중간에 랭케스터의 자택 현관 앞에서 아들과 프레디는 이 문제를 두고 서로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랭케스터와 그의 아내는 화목한 사이처럼 보이지만 프레디가 나타나고 나서 아내와의 관계보다 프레디와의 관계를 영화가 집중적으로 조명해줍니다.
  이처럼 랭케스터는 정신적으로, 유대적으로 프레디와의 인연이 서사가 진행될수록 단단해집니다. 프레디는 성격이 불 같지만 랭케스터는 물의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둘은 성향이 극과 극으로 다르지만 한 쌍의 퍼즐처럼 끼워 맞춰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랭케스터는 자신과 유별나게 다른 프레디를 인간에 관한 학문 탐구로서 흥미로운 사람으로 느낍니다. 그의 아내와 아들은 랭케스터의 차분함을 닮았죠. 본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은 변화에 재미를 느끼고 호기심을 쉽게 놓치지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랭케스터는 프레디와 아무리 싸워도 그를 쉽게 놓지 못하는 걸로 볼 수 있습니다. 랭케스터와 프레디의 만남은 본격적인 서사로 뛰어드는 도약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프레디

  프레디는 전쟁의 상흔을 입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일상 복귀는 다소 혼란스러운 면이 있을 겁니다.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삶이 그의 일상이나 다름없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랭케스터가 운영하는 "코즈"는 인간이란 원래 완전한 존재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종의 전생과 그다음 생을 반복해서 사는 형식을 통해 고통이 그 사람한테 쌓이고, 또한 영혼도 쌓이면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 회복 불능의 상태에 이른다고 봅니다. 그래서 "코즈"는 개인을 처음의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면 그 개인도 해방이 되고, 전쟁이나 기근이 없어진다는 식의 교리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과거를 캐는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프레디는 "코즈"의 치료 방식에 있어서 상당히 어긋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치장에서 두 사람의 갈등이 폭발한다.

  프레디는 과거에 도리스라는 여자와 순수한 사랑을 느꼈지만 전쟁 때문에 그녀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전쟁으로 인해 프레디는 상실된 순수 같은 느낌을 강렬하게 주고 술에 빠져들며 자학적인 면모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폐쇄공포증이라는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유치장에서 프레디가 답답하다 못해 변기를 발로 깨부수고 랭케스터와 거친 험담을 내뱉죠. 또 나중에 프레디가 랭케스터의 집 안에서 벽과 창문을 왔다 갔다 하며 "코즈"의 사회적응 훈련을 합니다. 다른 면에서 보면 랭케스터가 프레디의 갇혀버린 내면을 끄집어내려는 걸로 볼 수 있습니다. 훈련 초반에는 프레디가 답답함을 느끼며 해방을 원합니다. 미치고 팔짝 뛰며 "코즈"의 일원과 랭케스터 그리고 그의 가족들한테 욕을 내뱉으며 조롱합니다. 하지만 랭케스터는 개의치 않고 계속 진행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경찰한테 불법 유용 혐의로 유치장에 끌려갑니다. 프레디는 랭케스터에게 불신과 갈등을 폭발시키지만 랭케스터는 그럼에도 "너를 아끼는 건 나뿐이야"라고 본심을 드러냅니다.

 

포인트 찍고 달리는 게임. 랭케스터는 돌아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프레디는 랭케스터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마스터는 누군가의 상위 존재라고 할 수 있죠. 극 초반에 랭케스터가 질문을 하고 프레디는 답을 하는 입장입니다. 후반에는 프레디가 질문자의 역할을 하고 랭케스터는 대답을 주로 합니다. 프레디는 포인트 찍기 게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멀리 나아가 랭케스터와 결별하죠. 프레디는 결별한 후에 술집에서 한 여자를 만나죠. 그녀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 와중에 프레디가 질문합니다. 그리고 여자로 하여금 대답하게 만들죠. 심지어 그때 했던 질문들은 오래전 랭케스터가 했던 질문들이죠. 다시 말해서 프레디는 랭케스터가 했던 마스터로서의 역할을 질문을 통해서 수행한다고 볼 수 있고요. 여기서 마스터는 누구냐고 하는 질문에 대해서 최초의 마스터는 랭케스터로 보였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마스터의 역할을 하는 것은 정작 프레디라는 역설을 담고 있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신도를 상대로 "코즈"만의 독특한 최면 요법 치료 중인 랭케스터

  랭케스터는 굉장히 강력한 자기장처럼 보입니다. 프레디는 거기에 들어간 변수 혹은 변인이죠. 어떤 개체가 어떤 집단의 자기장 속으로 들어갔을 때 서로 작용하는 힘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프레디는 방황하고 정착하지 않는 아웃사이더의 특성을 가진 인물이라면, 정반대로 랭케스터는 정착하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떠돌아서야 집단을 유지할 수 없을 테니까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프레디는 육지에서 불안한 사람입니다. 초반에 프레디가 여러 명의 남자들한테 쫓겨 허허벌판을 달리는 장면은 그를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하죠. 그런데 바다 위에 있으면 편안해집니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는 필연적으로 떠돌 수밖에 없겠죠.

 

영화 후반, 런던의 랭케스터의 집무실에서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다.

  프레디와 랭케스터의 교묘한 접점 위에서 만난 곳이 배입니다. 그런데 헤어질 때 보면 배가 아니라 굉장히 넓고 큰 런던의 건물에서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것으로 대조되죠. 그리고 두 사람이 처음에 속을 터 놓았을 때는 가장 좁은 선실에서 거의 이마를 맞댈 정도의 좁은 공간이라면, 마지막에 두 사람이 헤어질 때는 몇 명의 사람이 쓰기에는 엄청 큰 집무실에서 두 사람이 공간을 울려가면서 대화 끝에 헤어지게 되는 공간적으로 대조적인 맥락을 갖고 있습니다. 프레디는 기본적으로 해병에다가 뱃사람인데 사진사라는 직업은 어울리지 않죠. 사진은 정체된 순간을 포착하는 건데 프레디의 성향과 맞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헤어지는 순간에 랭케스터의 부인인 메리가 예전에 "코즈"의 행동대장이었던 프레디한테 이제 당신의 사진 실력은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위의 맥락과 연결이 됩니다. 

 

배가 지나간 곳에 부서지는 포말

  <마스터>가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프레디가 두 번의 이별을 겪는 러브 스토리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사랑은 도리스라는 여인이고, 두 번째 사랑은 랭케스터입니다. 첫 번째 사랑인 도리스는 영화 속에서 제대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플래시 백을 통해서 문득 회상하는 기억으로 조금씩 보여주죠. 이와 관련해서 영화에서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는 것은  바다의 포말을 보여주는 장면이 총 세 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2차 세계대전 끝 무렵에 프레디가 햇빛 때문에 힘겹게 눈을 뜨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도리스가 노르웨이로 가야 하고 프레디는 상부의 명령으로 본인 스스로 중국의 상하이로 가야 됩니다. 처음에는 도리스를 두고 영원히 같이 행복하게 살 것처럼 얘기하다가 어느 순간 자기가 떠난다는 이야기를 하고 떠나게 되죠. 그때 떠나는 배의 후미에서 포말을 두 번째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레디가 런던에 있는 랭케스터를 만나러 가는 와중에 배의 후미에서 역시 똑같은 포말이 부서집니다. 그런데 세 번 중에서 육지를 보여주는 장면은 유일하게 두 번째 장면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 장면과 세 번째 장면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적어도 그 쇼트 안에서는 해결이 되지 않고요. 오로지 포말이 부서지는 바닷속에서의 혼란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두 번째 장면에서 상하이로 떠날 때, 포말을 보여주던 카메라가 수직으로 위를 향합니다. 카메라가 바다를 비추고 멀리 있는 육지를 보여줍니다. 왜 보여주냐면 육지 위는 도리스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러브 스토리의 안타깝고도 운명적인 슬픈 순간이 드러나죠.

 

도리스와 작별의 순간을 맞이한 프레디

  프레디라는 사람은  끊임없이 과거에 집착합니다. 그가 볼 수 있는 건 과거의 흔적밖에 없고 지극히 혼란스러운 포말로 표현이 된다는 것입니다. 도리스의 이야기는 파편적으로 영화 속에서 계속 등장하죠. 그리고 도리스에 관한 상처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 바로 두 번째 사랑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랭케스터와의 사랑 이야기죠.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처럼 보이고 연인 같은 느낌을 줍니다. 연인의 관계로 봤을 때, 랭케스터의 부인 메리(에이미 아담스)가 왜 그토록 후반부에 프레디를 차갑게 대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치장에서 나눈 대화를 봐도 연인관계와 유사한 것처럼 보입니다. 두 사람의 내적인 관계는 광의의 개념으로 사랑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프레디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 후, 다시 랭케스터와 만났을 때 둘은 레슬링 하듯이 서로 껴안으며 풀밭 위를 뒹굽니다. 제가 볼 땐 러브신과 유사하게 보입니다. 이 이후에 랭케스터가 프레디의 내면을 해방시켜주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두 사람의 어떤 감정적인 교류 같은 것이 장면 깊숙이 담겨 있습니다. 

 

"on a slow boat to sanghai" 노래를 부르는 랭케스터

  영화 마지막에 가서 프레디와 랭케스터는 런던의 집무실에서 뜨거운 포옹을 하며 만납니다. 여기서 랭케스터는 <On a slow boat to sanghai>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의 내용은 상하이로 가는 배 위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슬픔이 묻어납니다. 이 영화는 우리 삶에서 어떤 종류의 마스터이던 마스터 없이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치유와 고통을 넘나드는 삶 속에서 우리가 추종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또는 반대로 그토록 모셨던 대상의 한계에 대해서 쓸쓸하게 반추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죠. 

 

한 줄 평가 : 인(사람) 간(사이), 사람과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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