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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인생의 러닝타임은 몇 분인가요? 삶을 상영해주는 듯한 영화 10

by 브리즈B 2020. 3. 24.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극장으로 가야 했던 때가 있죠. 기술은 점점 발전해서, 어느덧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게 더 익숙한 시대가 됐습니다. 집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짧은 영상들을 보다 보면, 두 시간짜리 영화도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죠.

 

그런데도 여전히 긴 러닝타임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과 이를 즐기는 관객이 존재합니다. 다른 영화보다 몇 배는 더 긴 영화를 어떻게 보냐고 묻는다면, 상영 시간만큼 여운도 길기 때문이라고 답할 겁니다. 걸작이라고 불리는 영화 중에 러닝타임이 긴 작품들이 있습니다. 긴 러닝타임 때문에 시작도 전에 겁을 먹지만, 서서히 관객을 몰입시키면서 영화감상을 경이로운 체험으로 바꾸죠.

 

내 삶이 영상이 된다면, 이왕이면 짧은 영상보다는 긴 영화였으면 좋겠죠. 오늘은 러닝타임이 비교적 짧은 시간대부터 엄청 긴 시간대까지의 영화들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보는 내내 삶을 상영해주는 듯한 영화들의 러닝타임은 영화 치고는 길지만, 삶을 본다고 생각하면 짧은 시간입니다. 관객에게 삶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남기는 영화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11분의 삶, < 문라이트 >


 

| 감독: 베리 젠킨스

| 출연: 트레반테 로즈, 나오미 해리스

| 장르: 드라마,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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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푸르도록 치명적인 사랑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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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2016)는 사회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야 하는 고통 속에서도 결국 갈망하는 건 나 하나 제대로 알아봐 줄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둠 속의 은은한 달빛처럼 시적인 리얼리즘으로 소외되어 있는 미국 사회의 얼굴을 조명합니다. 베리 젠킨스 감독은 스스로 왕가위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본인 만의 감수성과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동시에 음악 사용이 탁월합니다. 마치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월광 소나타처럼.

 

<문라이트> 예고편

 


 

117분의 삶, < 늑대아이 >


 

| 감독: 호소다 마모루

| 출연: 미야자키 아오이, 오사와 타카오, 쿠로키 하루, 니시이 유키토, 오노 모모카

| 장르: 판타지,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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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여대생 '하나'는 강의실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그'에게 반하게 되고, 곧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늑대인간이었다. 너희가 늑대아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비밀이야! 늑대인간과의 동화 같은 사랑 후에 남은 것은 두 아이뿐... 눈 내리는 날에 태어난 누이 '유키', 비 내리는 날 태어난 동생 '아메'. 두 아이에게는 커다란 비밀이 있는데... 바로 흥분(!)하면 귀가 쫑긋! 꼬리가 쏙~ 나오는 늑대아이라는 것! 남들과 조금 다른 육아, 남들과 살짝 다른 고민! 신비로운 운명을 살아가는 남매와 특별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늑대아이>(2012)는 육아, 성장, 사랑에 대해 아름답게 그려낸 영화죠. 늑대아이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모습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슬프기도 합니다.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던 것들을 홀로 배워나가며 엄마의 길, 늑대의 길, 인간의 길을 찾아가는 가족을 통해 관객 자신을 발견하게 만듭니다.

 

<늑대아이> 예고편

 


 

121분의 삶, < 어느 가족 >


 

|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 출연: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죠 카이리, 키키 키린, 사사키 미유

| 장르: 범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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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 생활하며 가난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어느 가족. 우연히 길 위에서 떨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가족처럼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각자 품고 있던 비밀과 간절한 바람이 드러나게 되는데…

*

<어느 가족>(2018) 당시, 감독이 말하기를, 본인은 '무엇을 보여 주지 않는가, 무엇을 이야기하지 않는가'에 도전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가족영화들을 만드는 결정적 이유라고 할 수 있죠.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하지 못하기에 도리어 더 끈끈할 수 있었던, 관계의 역설을 다루며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 근원에 다가갑니다.

 

<어느 가족> 예고편

 


 

134분의 삶, < 로마 >


 

| 감독: 알폰소 쿠아론

| 출연: 마리나 데 타비라, 얄리차 아파리시오

| 장르: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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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아카데미상을 받은 감독 겸 작가 알폰소 쿠아론(《그래비티》 《칠드런 오브 맨》 《이 투 마마》)의 어린 시절을 반영한 자전적 작품이다. 멕시코시티 내 로마 지역을 배경으로, 한 중산층 가족의 젊은 가정부인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는 흘러간다. 감독 자신을 키워낸 여성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이 작품은 1970년대 멕시코의 정치적 격랑 속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가정 내 불화와 사회적인 억압을 생생히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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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2018)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유년시절, 자신을 돌봐줬던 하녀와 어머니를, 비겁함과 허세뿐인 남성들과 상징적으로 대비해서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탈리아 혼란의 시기를 사랑으로 이겨낸 강인한 여성들에게 헌사하는 선물로 볼 수 있죠. 보잘것없는 우리가 거인이 될 수 있는 건, 저렇게 서로에게 투신하듯 연대적인 마음이 있어서 가능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기에 일상은 기적이 되고, 삶은 축제가 될 수 있으리란 말이 꼭 거짓은 아니죠.

 

<로마> 예고편

 


 

165분의 삶, < 보이후드 >


 

|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 출연: 패트리샤 아퀘트, 엘라 콜트레인, 에단 호크

| 장르: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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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와 그의 누나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는 싱글맘인 ‘올리비아’(패트리시아 아퀘트)와 텍사스에 살고 있다. 아빠인 ‘메이슨 시니어’(에단 호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메이슨’과 ‘사만다’를 데리고 캠핑을 가거나 야구장에 데려가며 친구처럼 놀아 주곤 하지만 함께 살 수는 없다. 게다가 엄마의 일 때문에 친구들과 헤어져 계속해서 낯선 도시로 이사를 다녀야 하는 메이슨은 외로운 나날을 보내며 점차 성장해가는데...

*

<보이후드>(2014)를 찍기 십 수년 전, 뉴욕 시사회에서 링클레이터 감독이 소년(엘라 콜트레인)을 만났습니다. 그 후로 1년에 사흘씩 12년을 찍어 처음 쓴 각본대로 영화가 나왔다고 하죠. 영화를 다 보고나면 내 인생도 찍어달라고 감독에게 청하고 싶어 집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영화로 제작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 감독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누구나 지나왔지만 누구도 같지 않은 소중한 시절들을 간직하며 우리 모두 평범하기에 특별합니다.

 

<보이후드> 예고편

 


 

173분의 삶, < 하나 그리고 둘 >


 

| 감독: 에드워드 양

| 출연: 오념진, 금연령, 오가타 이세이, 켈리 리, 조나단 창, 진희성

| 장르: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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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8살 소년 양양은 아빠 NJ로부터 카메라를 선물 받는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찍는 양양. 양양의 사진 속에는 사업이 위기에 빠진 시기에 30년 전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 아빠 NJ. 외할머니가 사고로 쓰러진 뒤 슬픔에 빠져 집을 떠나 있게 된 엄마 민민. 외할머니의 사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누나 팅팅. 그리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진실의 절반’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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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리고 둘>(2000) 속, 세월이 지날수록 삶은 손아귀를 벗어나기에, 사람들은 돈이든 사랑이든 눈에 보이는 성취로 다시 그 삶을 쟁취하려 듭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인생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게 아니라면, 그 한계를 정직하게 수용하는 것에 아름다움이 있지 않냐고 영화는 되묻습니다. 인생은 사람의 뒷모습처럼 종잡을 수 없죠. 삶의 애환은 그들과 마주쳤을 때 보입니다.

 

<하나 그리고 둘> 예고편

 


 

217분의 삶, < 유레카 >


 

| 감독: 아오야마 신지

| 출연: 야쿠쇼 코지, 미야자키 아오이, 사이토 요이치로

| 장르: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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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납치 사건에서 살아남은 버스 운전사 사와이 마코토(야쿠쇼 코지)와 중학생인 나오키(미야자키 마사루),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나오키의 여동생(미야자키 아오이)는 몰려든 보도진과 주변의 끊임없는 호기심 속에 더욱 깊은 상처를 받는다. 사와이는 가족들을 뒤로 한채 홀로 떠나고 나오키 남매의 집은 파경에 이른다. 2년 후, 마을에 돌아온 사와이는 나오키 남매와 한 집에 살기로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으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는데...

*

<유레카>(2000)는 갈색톤의 화면으로 진행됩니다. 1995년 3월, 옴진리교가 도쿄 지하철에 사린 가스를 살포하여 십여 명이 죽고 몇천 명이 다치며, 이 사건은 일본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습니다. <유레카>는 지하철 사건을 버스 사건으로 바꾸었을 뿐, 당시 사건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행복과 불행은 주인공들처럼 마치 주사위 게임을 하듯 예측 불가한 순서로 찾아오고, 그에 따른 결과도 함부로 예상할 수 없죠. 그러므로 삶은 그 어떤 조건을 떠나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상처는 여전하고, 세상은 차갑겠지만 그런데도 죽지 않고 버텨냈다면 그걸로 된 겁니다. 그리 따뜻하지 않은 세상의 이치를 인정하고 외쳐봅니다, '유레카'라고.

 

<유레카> 예고편

 


 

234분의 삶, < 코끼리는 그 곳에 있어 >


 

| 감독: 후 보

| 출연: 장 유, 왕위원, 팽욱창, 리총시

| 장르: 드라마

*

1. 친구의 부인과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친구는 내 눈앞에서 투신자살했다.
2. 학교 폭력에 휘말렸는데, 가해자를 다치게 했다. 중태 상태다. 나는 살인자가 될 것 같다.
3. 가족들에게 버려져 양로원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강아지가 사고로 죽었다.
4. 원조 교제 사실이 전교생에게 공개되었다. 엄마도 나를 포기했다.
지독한 현실, 탈출구 없는 삶. 만저우리에 가면 코끼리를 만날 수 있을까?

*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2018)는 영화가 끝난 뒤 후 보 감독의 사진과 함께 그에 대한 애도를 보냅니다. 88년생으로 젊은 나이에 자신의 소설을 원작 삼아 영화를 만든 후 보 감독은, 17년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코끼리는 그 곳에 있다>가 데뷔작이자 유작이 됐습니다. 자신이 상상하는 코끼리를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끝난 뒤 마주하는 후 보 감독의 죽음은 영화 이상의 슬픔을 안깁니다. 분명 많은 이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도시이지만, 다들 이 도시를 증오하고 떠나고 싶어 합니다. 불행이 고삐 풀린 짐승처럼 돌아다니는 듯, 모든 인물이 병처럼 서로에게 불행을 옮기고 다닙니다. 앉아 있는 코끼리를 보러 가는 게 희망 없는 도시에 멈춰있는 것보단 나아 보이며 고통에서 도망치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버티는 것과 피하는 것 중 무엇이 맞는지 누가 감히 답을 내릴 수 없으니 전진합니다.

 

<코끼리는 그 곳에 있어> 예고편

 


 

237분의 삶,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


 

| 감독: 에드워드 양

| 출연: 장첸, 양정이

| 장르: 범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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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소녀를 만나다. “이제 너에게 남은 희망은 나 밖에 없어”
14살 소년 샤오쓰(장첸)는 국어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중학교 주간부에서 야간부로 반을 옮기게 되고 ‘소공원’ 파와 어울려 다닌다. 그러던 중 샤오쓰는 양호실에서 밍(양정이)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는 ‘소공원’파의 보스 허니의 여자로 허니는 샤오밍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조직인 ‘217’파의 보스를 죽이고 은둔 중이다. 보스의 부재로 통제력을 상실한 ‘소공원’파는 보스 자리를 두고 혼란에 빠지고 돌연 허니가 돌아오게 되면서 ‘소공원’파 내부와 ‘217’ 파간의 대립이 격해진다. 그리고 밍을 사랑하게 된 샤오쓰도 이들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데…

*

에드워드 양 감독은 2007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많은 관객의 삶에 유효기간 없이 남아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은 1961년 대만에서 14살 소년이 또래 학생을 칼로 찔러 죽인, 대만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죠. 소년의 삶을 따라가면, 당시에 혼란스러웠던 대만 사회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는 샤오쓰가 손전등을 훔치면서 시작합니다. 샤오쓰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이 만든 빛을 희망처럼 따라가지만, 그 빛은 어둠 전체를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죠. 어둠으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건 손전등이 아니라, 어둠을 없애고 불을 켜줄 세상입니다. 영화는 그 어떤 긍정 혹은 부정도 하지 않고, 세상과 부딪힌 개인이 할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 중 가장 어두운 수를 보여줍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예고편

 


 

317분의 삶, < 해피 아워 >


 

|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 출연: 타나카 사치에, 키쿠치 하즈키, 미하라 마이코, 카와무라 리라

| 장르: 드라마

*

30대에 접어든 네 명의 친구는 서로에게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이다. 그러나 한 명이 갑자기 사라지자 남겨진 셋은 혼란에 빠진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기나긴 밤을 지새우며 묻는다. “네가 되고자 했던 네 자신이니?”

*

<해피 아워>(2015)는 워크숍과 낭독회, 두 가지 활동을 길게 보여줍니다. 워크숍에서는 이마를 맞대고 서로의 생각을 맞추거나, 상대의 단전에 귀를 기울이고 몸 깊은 곳의 소리를 들어봅니다. 낭독회에서는 소설가가 낭독할 동안 참석한 이들은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소설 속 상황과 비슷한 삶의 어떤 지점으로 이동합니다. 두 가지 모두 소통을 위한 활동이죠. 상대를 이해하고,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 화부터 내는 친구는 나 대신 화를 내주는 친구이기도 하고,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는 친구는 때로는 기대고 싶은 친구이기도 합니다. 완벽한 관계는 없기에 모든 관계 안에는 상처와 즐거움이 공존하죠. <해피 아워>(2015)는 돌아보면 행복한, ‘해피 아워’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낸 이들과의 우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해피 아워>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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