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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일으킨 초유의 사태, 집단감염의 공포를 다룬 영화 5편

by 브리즈B 2020. 4. 15.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오랜 옛날부터 인류를 괴롭혀 오던 바이러스성 전염병은 전쟁이나 기근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재난이었죠. 14세기 흑사병은 유럽 인구를 절반으로 줄여 놓았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의 스페인 독감으로 약 5천만 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1981년에 확인된 AIDS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는 지금까지 3,200만 명에 이릅니다.

 

지금 이 시각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요. 원인 모를 바이러스가 개개인을 비스름하게 무화시킵니다. 유서 깊고 휘황한 도시마저 간신히 체면치레하기 바쁘죠. 수인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어 텅 빈 회색빛 도시 정경이 무참합니다. 흰 마스크를 쓰고 고개를 떨군 채 타인을 경계하는 군중은 카뮈의 오랑을 다시금 상기시키죠. 그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오늘은 무차별적인 집단 감염의 공포를 다룬 두 작품을 통해 우리 모습을 반추해봅니다.

 


 

< 다크 워터스 >


 

며칠 전 토드 헤인즈 감독의 신작 <다크 워터스>를 관람했습니다. 개봉 일에 맞춰 용산구의 한 영화관을 찾았죠. 전염병의 여파로 객석은 듬성듬성했습니다. 영화는 인체에 치명적인 화학물질을 여과 없이 퍼뜨린 거대 기업을 소재로 합니다. 꽤 시의성 있는 소재였음에도 관심은 기대 이하였죠. 집단감염의 치명적인 여파에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영화 의도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영화는 '헐크'로 유명한 마크 러팔로가 주연입니다. 그는 세계 최대 화학 그룹인 듀폰을 상대로 이십 년 넘게 법정 투쟁을 이어가는 변호사 롭 빌럿 역을 맡았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마크 러팔로가 과거에도 듀폰 가와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는 점이죠. 그는 영화 <폭스캐처>에서 듀폰사 4대손이자 미국 레슬링협회 후원자였던 존 E. 듀폰의 총에 머리를 관통당한 바 있습니다. 방대한 사유지를 소유하고 저택에서 고답적인 생활을 하는 거대 기업가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요. 그들에게 인류란 그저 수치적인 실적과 수직적인 계층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요. <다크 워터스>는 보편과 동떨어진 거대 기업 문화의 야만적인 면모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기업 법무 변호사 '롭'은 어느 날 회의 중에 회사로 찾아온 고향마을 농부의 제보를 받습니다. 농부의 주장에 따르면 듀폰사가 고향마을에 대량 독성물질을 허가 없이 방류 중이라고 합니다. 처음에 롭은 농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실제 마을을 찾아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후에 심각성을 깨닫죠. 롭은 조사를 진행하며 농장에 방류된 물질이 PFOA라는 독성 폐기물이라는 것을 알아냅니다. 심지어 우리가 사용하는 생활용품 곳곳에 이 물질이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합니다. 이미 듀폰사 제품이 전 세계 시장에 수출된 상태라 손써볼 도리가 없는 상태였죠. 영화는 롭이 20년 넘게 듀폰사와 벌이는 소송전을 좇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언론에서 다룬 바 있지만, 대중이 쉽게 이해하기엔 맥락이 지나치게 복잡합니다. 게다가 영화가 내내 스펙터클 없이 오직 서류로 고뇌하는 게 전부라 보는 이마저 지치게 만들죠. 그건 마치 세계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부연과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정보를 축약하고 사건의 맥을 짚는 데 집중합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지난 작품이 의미를 건져내는 스토리텔링과 거리를 뒀다면, <다크 워터스>는 선명한 연출 시사점을 가지고 사실에 육박하죠. 절체절명의 사건인 만큼 스타일을 최대한 죽이고 시종일관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태를 직시합니다. 

 

<다크 워터스> 예고편

듀폰이라는 거대 기업은 국내 모기업과 이름을 바꿔 써도 별반 다르지 않은 무형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늘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사용하지만, 정작 그 실체는 번쩍번쩍한 광고 뒤에 가려 보이지 않죠. 초대형 로펌의 지원을 받는 대기업은 법 테두리 밖에 기생하고, 그 과정에서 독성 물질은 쉼 없이 뻗어 나갑니다. 우리는 변호사 롭의 선의를 알지만, 그가 어찌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하며 영화를 봅니다. 비이성적 행동을 일삼는 불특정 다수는 여전하고, 악은 매끈한 형태로 우리 곁에 기생하고 있죠. 무력감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크 워터스

젖소 190마리의 떼죽음메스꺼움과 고열에 시달리는 사람들기형아들의 출생그리고, 한 마을에 퍼지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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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테이젼 >


 

스물여섯의 나이에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칸 영화제 최연소 황금종려상을 받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작품으로, 치명적인 변종 바이러스의 발생부터 백신이 개발되어 판데믹 상황이 종료되는 130여 일을 그렸습니다. 로렌스 피시번, 마리옹 꼬띠아르, 맷 데이먼, 주드 로, 케이트 윈슬렛 등 배우들의 명연기와 함께 과학적인 묘사가 정확하다는 찬사를 받았죠. 여기에는 세계 보건기구(WHO)와 래리 브릴리언트(Larry Brilliant)와 같은 유행병학자들의 자문이 주효했습니다. 질병관리본부(CDC)의 수뇌부와 위험을 무릅쓰고 역학 조사를 하고 백신을 개발하는 학자들, 가족을 잃고 사회적 공황 상태를 견디는 일반인들, 그리고 거짓 사실을 퍼뜨려 사람들을 선동하고 돈을 버는 기회주의적 사업자들의 다양한 시각을 과장 없이 현실적으로 담았습니다. 

 

<컨테이젼> 예고편

 

 

컨테이젼

아무 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베스(기네스 팰트로)가 발작을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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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먼 자들의 도시 >


 

어느 화창한 날 오후, 한 운전자가 이유 없이 눈이 먼다. 도시는 쉽사리 마비되고 그와 접촉한 사람들이 우후죽순 같은 증세를 보입니다. 무차별한 감염과 패닉. 정부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인간들을 수용소에 가두기 시작합니다.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진 <눈먼 자들의 도시>는 요즘 시국에 걸맞은 이야기죠. 차이라면 <눈먼 자들의 도시>는 사람들이 눈이 머는 이유에 대해 일언반구 설명이 없다는 점입니다. 집단 감염의 공포를 손에 잡힐 듯 서술하지만, 맥락이 없다는 점에서 초자연적입니다.

 

눈이 먼 사람들은 바이러스로 앓는 환자보다 맹렬합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약탈을 일삼고, 욕정을 참지 못해 폭력에 휘둘리죠. 이 작품을 일종의 사회학 실험실로 꾸린 작가는 눈먼 개체의 행동을 유심히 살핍니다. 눈 하나 멀었다고 이성까지 잃은 인간은 마치 인터넷 댓글 난의 흉포한 무리와 다를 게 없죠. 작가가 그 잔인함에 편승해 눈을 뜬 인간들의 통념과 허위를 폭로하고자 한다는 걸 눈치채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너절한 인간의 밑바닥은 도망칠 구석 없이 노골적으로 그려져 피로를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수용소에 대한 묘사는 절망이 엄습합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생존을 위해 온갖 오물과 갈등을 견뎌야 했던 나치 수용소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죠.

 

 

인류가 지닌 당위가 엎질러지면 어떤 모습일까요. 이는 존엄이라는 게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선 내팽개쳐지는 건 아닐까 하는 존재의 고민과 맥이 닿아있습니다. 마치 벌레가 된 프란츠 카프카의 '그레고르 잠자'처럼 인류가 구축한 문화와 지성도 별 힘도 못 쓰고 불안에 휘둘립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집단감염이 지닌 두려움은 바이러스 그 자체가 아닌 오히려 그 영향을 끼친 인간 존재의 미천함을 발현하는 촉매로 기능합니다. 한편 생존을 위해 기꺼이 모멸을 감수하는 모습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하죠. 우리는 때론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 게 낫다고 쉽게 말하지만, 정작 목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고 삽니다. 영화는 살아가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인간 군상을 통해 인간다움이라는 건 생존 그 자체에 있다고 말합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눈이 멀지 않은 단 한 사람의 등장으로 우리는 숨통을 튑니다. 독자에게 관찰 시점을 선사하는 그는 구원과 같죠. 그는 때때로 작가 입장에 서서 관찰 기록을 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귀하고 영적인, 더 높은 목소리로 세상을 굽어봅니다. 이는 비감염자가 지닌 권력, 감염자를 배척하고 밀어내는 힘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죠. 질병으로 인해 개인성이 파괴된 약자들을 배척하는 국가 정책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권총의 상징도 흥미롭습니다. 수용소에 떨어진 한 자루의 총은 대중을 장악하고, 속된 인간들을 휘두릅니다. 종교의 위치에 선 눈 뜬 자와 총 한 자루에 고개를 숙이고 아첨을 떠는 인간들을 통해 권력의 작동방식은 조지 오웰이 그려낸 디스토피아와 다르지 않게 보이죠. 이런 노골적인 도식은 인간 존재의 한계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으로 기능합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예고편

 

 

눈먼 자들의 도시

평범한 어느 날 오후, 앞이 보이지 않는 한 남자가 차도 한 가운데에서 차를 세운다. 이후 그를 집에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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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기 >


 

<무사>(2001)의 김성수 감독이 10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작품으로, 약 1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분당에 들이닥친 판데믹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홍콩에서 건너온 밀입국 컨테이너를 통해 유입된 100% 치사율의 조류 인플루엔자가 급속히 분당에 퍼지고, 정부는 도시를 봉쇄하여 상황을 통제하려 합니다. 개봉 초기에 예매율 수위를 달리며 선전했으나 갈수록 힘이 떨어지며 310만 명의 관객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영화에서 설정한 바이러스의 독성이 너무 강하다거나, 서울 인근 분당을 봉쇄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부의 부실하고 비상식적인 대응이나 미국의 지나친 간섭과 개입 등 비현실적 각본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감기> 예고편

 

 

감기

호흡기로 감염, 감염속도 초당 3.4명, 치사율 100%의 유례 없는 최악의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에 발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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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웃브레이크 >


 

에볼라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경고한 리처드 프레스톤의 베스트셀러 <The Hot Zone>(1994)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로, 더스틴 호프만, 르네 루소, 모건 프리맨, 케빈 스페이시, 쿠바 구딩 주니어 등 초호화 배우진이 출연했습니다. 실제 중앙아프리카의 자이르 지역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시기라, 극장 수입으로 1억 9천만 달러를 올리며 흥행에 성공하였죠. 하지만 평단의 평가는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과장된 용단으로 어떤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다는 얕은 영화”라고 뉴욕 타임스가 꼬집었습니다. 숙주 원숭이를 미국으로 옮기는 화물선으로 한국 국적의 '태극호'가 등장하여 다소 어색하기도 했지만,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경고한 첫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아웃브레이크> 예고편

 

 

아웃브레이크

1967년 아프리카 자이르(Zaire)의 모타바 계곡 용병 캠프에서 의문의 출혈열이 발생, 군인들이 죽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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