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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시 쉬었다 가세요"
The Good Movies/액션

<사냥의 시간> _ 5분 줄테니 도망가라 했을 때 나도 도망갔어야 했다

by 브리즈B 2020. 5. 6.

<사냥의 시간, 2020>

 

감독: 윤성현

출연: 이제훈, 최우식, 안재홍, 박정민, 박해수

개요: 스릴러, 액션 / 한국 / 미래배경, 추적

 

희망 없는 도시, 감옥에서 출소한 '준석'(이제훈)은

가족 같은 친구들 '장호'(안재홍)와 '기훈'(최우식)

그리고 '상수'(박정민)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위한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다.

 

하지만 미래를 향한 부푼 기대도 잠시, 

정체불명의 추격자가 나타나

목숨을 노리며 이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서로가 세상의 전부인 네 친구들은

놈의 사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냥의 시간> 공식 예고편

 


 

" 사냥의 시간 짚어보기 "


영화 <파수꾼>

  독립영화계에 전설로 불리는 작품이 있습니다.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이라는 작품이죠. 남자 고등학생들의 세계와 심리, 관계를 세밀하게 그려낸 영화 <파수꾼>은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제훈과 박정민이라는 지금의 대세 배우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9년의 시간이 지나 마침내 윤성현 감독이 <사냥의 시간>이라는 작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훈과 박정민은 자신들을 스타로 만들어준 윤성현 감독의 작품에 기꺼이 출연했고 <기생충>, <마녀>, <사자> 등의 영화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최우식과 이제는 주연 배우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안재홍이 가세했습니다. 최근 <양자물리학>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던 박해수도 출연하며 <사냥의 시간>은 역대급 출연진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최우식, 박해수, 이제훈, 박정민, 안재홍. 충무로 대세 스타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 라인업은 충무로의 오늘이자 내일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송강호, 설경구, 한석규 등의 중년 배우들이 나이를 먹어가고 이병헌이 50을 바라보고 하정우가 40대가 된 지금 시점에서 한국 영화의 미래를 논할 젊은 남자 배우들이 총출동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세대교체를 입에 올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배우들이고 향후 10년 동안 이들이 전성기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죠. 그렇기에 이 작품이 지닌 의미는 컸습니다.

 

넷플릭스 공개 확정된 <사냥의 시간>

  최근 유튜브나 SNS에서 기대를 모은 라인업으로 화두에 오른 <사냥의 시간>은 단언컨대 2020년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였습니다. 코로나 19로 시절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며 문제가 생겼습니다. 2월에 예정되었던 시사회가 무산되고 개봉이 불투명해졌습니다. <사냥의 시간>측은 개봉을 미루다 '넷플릭스'에서 개봉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이에 해외 판권을 지녔던 '콘텐츠 판다'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다툼이 벌어졌고, 극적으로 합의하는 과정까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죠.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지난 4월 23일 목요일 오후 4시에 <사냥의 시간>이 베일을 벗었습니다.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의아함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참담한 심정이 더 커지는 걸 느꼈습니다. <파수꾼>의 영광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윤성현 감독이 정말로 진지한 이야기 혹은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일 것이라 기대했건만, 정작 화면을 통해 보이는 건 안타까울 정도로 진부합니다. 그저 외국 영화들의 아류에 불과한 스릴러 물이었습니다. 중간에 감독의 재능과 능력이 엿보이는 장면이 잠깐 나와서 더욱 아쉬웠습니다. 

 

  9년의 시간 동안 배우들은 성장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9년의 시간이 꼭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아니죠. 9년이 지나 돌아온 윤성현 감독의 작품은 실망스러웠습니다. <파수꾼>의 영광을 뒤로 한 채 넷플릭스로 돌아온 <사냥의 시간>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 극장 대신 넷플릭스를 택한 사냥의 시간, 그 결과... "


  솔직히 저는 '넷플릭스' 공개를 반기는 편이었습니다.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영화 산업 발전을 희망하지만, 코로나 19로 세상이 어려운 시점에서는 '넷플릭스'가 좋은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니 미안한 말이지만 개봉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극장에서 개봉했더라면 처참하게 실패했을 것입니다. 꼭 코로나 19가 아니었더라도 말입니다. 그 이유를 이야기해보죠.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냥의 시간> 속 미래 배경

  <사냥의 시간>의 첫 장면을 보는 순간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냥의 시간>이 그리고 있는 한국의 모습은 외환위기를 겪은 채 무너져 내린 사이버 펑크적인,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사회입니다. LED 광고판과 을씨년스럽게 방치된 건물들, 회색으로 물든 도시의 모습은 마치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케 합니다. 그 압도적인 분위기를 보며 점점 기대를 모으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출소한 준석

  영화는 기훈(최우식)과 장호(안재홍)가 준석(이제훈)의 출소를 맞이하러 가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준석이 감옥에 들어가 있는 동안 세상은 더욱 차갑게 변해 있었습니다. 원화는 별 의미 없고 달러가 중시되는 세상. 취업은 당연히 어렵고 거리에서는 매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거리 또한 황량할 정도로 한산하죠. 준석이 감옥에 가기 전에 한탕 해서 남겨놓은 돈은 이젠 남아있지 않습니다. 준석은 기훈과 장호에게 꿈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감옥에서 만난 형님이 이야기해준 것이죠. 20만 달러만 있으면 매달 8천 달러씩 나오는 점포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대만의 해안가에서 집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와이 같은 에메랄드 빛 해안에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니 유토피아라 할 수 있죠.

  준석이 낙원을 꿈꾸고 있을 때, 기훈과 장호는 준석의 말을 의심합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감옥에 있다가 나온 친구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고, 어차피 대만의 점포니 감옥에서  만났다는 형님은 맥거핀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혹은 기훈과 장호가 준석이를 속이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상수를 협박하는 준석

  일단 인물들의 관계와 과거에 대해 궁금하게 만든다는 측면에서는 성공적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흐름에서 저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준석이는 감옥에 들어가기 전부터 돈 거래 등으로 불편한 관계였던 상수(박정민)를 찾아갑니다. 준석이는 상수에게 당장 돈을 내놓으라고 하지만 상수한테 그런 돈은 없었죠. 이에 준석은 상수가 일하는 도박장을 털 테니 도우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영화가 무너지는 것은 바로 이 시점부터죠. 저는 이게 윤성현 감독의 판단 미스라고 생각합니다.

 


 

" 사냥의 시간, 무엇이 문제일까? "


도박장을 털 계획을 세우는 네 친구

  일단 준석에게 정신 차리라고 외치는 기훈의 말에 저는 동의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준석은 도박장을 털 어떤 확실한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도박장을 털 만큼의 베짱이나 실력을 지닌 것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준석에게 유독 호의적인 장호는 심한 천식을 앓고 있는 환자입니다. 호흡기가 없으면 당장 문제가 생길 정도죠. 기훈이는 딱 봐도 말만 앞서는 캐릭터고, 상수는 겁이 많아 보이는 데다 일단 준석과 그리 가깝지도 않습니다. 이런 애들을 데리고 토박장을 턴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죠.

  게다가 아는 형이라는 조성하는 무기를 밀매하고 있고, 무기를 무상으로 빌려줍니다. 거기에는 어떤 설명도 없습니다. 물론 이 작은 디테일 정도는 눈감고 넘어갈 수 있죠. 영화 초반에 세상이 변했고, 요즘은 누구나 총을 들고 설친다고 했으니 무기 밀매상이 있을 수도 있고, 준석이랑 친하니까 그냥 빌려줄 수도 있죠.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도박장을 급습하러 가는 네 친구

  이 친구들이 판다는 작전이 너무나 허술한 겁니다. 유치해서 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대로 훈련한 것도 아니고 주먹구구식으로 도박장을 털겠다는 겁니다. 아무리 총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애들이 너무 아마추어 같아요. 게다가 미국식 강도 영화를 하나도 참고하지 않았는지 역할 분배도 형편없었습니다. 밖에서 한 명 정도는 망을 본다거나, 운송책, 그러니까 운전 전문이 차에 탄 채 대기하거나, 갈아탈 차를 준비해두는 식의 작전은 전혀 동원되지 않습니다.

  도박장을 터는 와중에도 '시간이 없다'는 말을 막 합니다. 잡아둔 인질들에게 '우리 아마추어요'하고 외치는 것과 같은 말이죠. 도박장의 경호원들이 무능해서 그렇지, 조금만 영리한 자가 있었어도 상수가 총을 쏠 수 없다는 걸 알아챘을 겁니다. 그리고 제압하고 총을 빼앗기만 하면 아마추어들은 우습죠. 물론 준석과 친구들을 이토록 허술하게 표현한 것은 이 친구들이 아주 순진하고 어설픈 청년들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걸 압니다. 다만 그걸 강조하는 방식이 잘못되어서 영화 자체가 어설프게 보인다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준석과 친구들은 어설프더라도 영화의 세계 전체가 어설퍼서는 안 되는 거죠. 

 

문제의 캐릭터, '한'

  그리고 문제의 '한'(박해수)이 등장합니다. 한은 완벽한 전투 능력을 지니고 있는 추적자입니다. 한이 무기 밀매상을 죽이고, 상수까지 덮치죠. 상수는 너무나 순진한 나머지 도박장을 턴 다음날, 도박장에 출근하는 용감하고도 멍청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후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오지 않죠. 그렇게 한은 준석과 기훈, 장호가 있는 곳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준석이는 도망치는 와중인데도 바에 가서 술을 마십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게 떨려서 진정이 안 되면 술을 사와서 먹으면 되지 왜 위험을 감수하고 바에 갔을까요. 어쨌든 바에서 한과 마주치는 장면은 이 영화 최고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이 상황에서의 긴장감은 정말 훌륭했어요. 그리고 이 긴장감이 아마도 이 영화 최고의 장면으로 일컬어질 주차장 시퀀스로 이어집니다.

 

한이 준석에게 5분의 시간을 줄테니 달아나라고 한다.

  주차장에서 준석 일행을 찾아내고 그들을 잡아내는 한. 준석은 죽음을 각오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은 "5분의 시간을 줄 테니 달아나라"라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대략 정신이 멍해지더군요. 한이라는 인물은 아무리 봐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카슨 웰스와 비슷한 인물입니다. 살인청부업자로, 안톤 쉬거를 잡으라는 명령을 받은 뛰어난 군인 출신 해결사죠. 도박장의 의뢰를 받아서 이들을 사냥한다는 것도 카슨 웰스와 비슷합니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연쇄살인마 안톤 쉬거

  반면에 윤성현 감독은 한을 안톤 쉬거처럼 그리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안톤 쉬거는 의인화된 죽음이자 움직이는 재난입니다. 합리도 감정도 없이 움직이는 미치광이죠. 이 둘을 섞다 보니 한은 카슨 웰스처럼 의뢰를 받아 누군가를 추적하다, 추적에 성공하니 동전을 던지는 안톤 쉬거처럼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겁니다. 그 결과, 캐릭터가 완전히 붕괴되고 마는 거죠. 안톤 쉬거를 어설프게 따라 하니 중2병 걸린 유치한 살인마가 완성되는 겁니다. 박해수가 엄청난 연기력과 표현력으로 한이라는 캐릭터를 멋지게 그려내고 있지만 그 유치하고 조잡한 캐릭터성을 극복하지는 못합니다.

 


 

" 어설프기 짝이 없는 "


병원에서 한을 피해 달아나려는 준석, 장호, 기훈

  영화는 점차 막장으로 치닫습니다. 준석과 기훈은 한의 총에 맞아 다친 장호를 병원으로 옮깁니다. 쫓기는 중인데도 불구하고 임원 수속을 다 밟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태연히 입원실에 들어가 자고 있는 장호의 모습은 압권입니다. 게다가 타고 온 차량은 망가진 상태로 길 위에 그대로 둬서 지나다니는 사람들 모두에게 "여기가 수상해요!"라고 외치는 판이죠. 한 입장에서는 우스울 것 같긴 합니다. 분명히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준하는 세계를 보여줬던 <사냥의 시간>은 의외로 병원은 멀쩡하다는 반전을 보여줍니다. 응급의료센터도 잘 운영되고 있더군요. 그렇다면 의사는 총상 환자를 발견했으니 당연히 경찰에 신고를 하겠죠? 준석과 기훈, 장호는 그런데도 병원에서 지내는 거고요.

 

 

  그리고 무의미한 총격전, 도주, 총격전으로 이어집니다. 플롯이 너무 단순해서 뭐라 할 말도 없습니다. 한이 타고 온 차를 훔쳐서 타보니 그 차량은 경찰 차량이었습니다. 한이 경찰도 마음대로 움직이는 거대한 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음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더욱 더 안톤 쉬거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대목이죠.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당연히 경찰차를 버리지 않습니다. 초등학생들도 경찰차를 훔쳐서 이동하면 추적된다는 걸 알지 않을까요? 항구 근처에서 마지막 전투가 벌어집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훈

  물론 이때도 준석이는 '답답해서 돌아다니는' 괴상한 일을 벌입니다. 한이 추적하고 있고, 숨어 있어야 하는 판인데 그냥 막 돌아다니는 거죠. 중간에 기훈이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기훈이의 집에는 이미 적들이 왔으므로 최후는 볼 것도 없죠. 그렇게 준석과 부상 당한 장호가 2대 1의 대결을 펼칩니다. 이 부분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가장 강하게 연상시키는 장면일 겁니다. 그냥 아류에 불과할 정도죠.

 

한이랑 대치 중인 준석

  총격전도 이제는 아무런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한이 잘 싸우고, 예상대로 장호가 다칩니다. 그리고 장호의 죽음을 두고 우리나라 영화답게 한바탕 신파가 벌어지죠. 분명 무척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이던 한은,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 해도 준석과 장호가 한바탕 울며 긴 대사를 나누고 신파 장면을 몇 분 동안 끄는데도 절대 공격하지 않습니다. 마치 일본 변신 히어로 만화나 슈퍼 전대물에서 변신할 때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법칙을 보는 것 같죠. 분노에 찬 준석이 한에게 덤비다가 당하고, 한은 무기 밀매상의 형에게 당하고, 준석이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대만에 갑니다. 그렇게 총을 맞고 그 주위에 사람들도 있었고 준석이가 큰돈을 훔치고 달아났다는 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가능했던 모양이군요? 

 

시위 한복판에 서 있는 기훈

  영화의 결말도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중간에 기훈이의 영혼이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혀를 차야만 했습니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청년 세대가 얼마나 살기 어려운지 드러내려는 것이겠죠. 순수하지만 어설픈 이 청년들이 도무지 살기가 어렵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한탕해서 달아나려는 헛된 꿈을 꿉니다. 망상처럼. 그걸 한이라는 캐릭터가 소위 '참교육'을 시전 한다는 거죠. 영화가 드러내려는 주제도 뻔한 겁니다. 디스토피아의 한국은 지금의 살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은유인 것이고, 대만으로 도망간다는 건 결국 도피를 의미하는 것이죠. "도망쳐서 도달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베르세르크 식 주제를 전달하려는 게 목적이었을 겁니다. 준석이 "싸우는 수밖에 없다"라고 했던 것은 결말을 암시하는 것이고 결국 이 지긋지긋한 헬조선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 배우들의 연기가 빛나서 더 처량한 영화 "


 

  <사냥의 시간>은 얄팍한 영화입니다. 첫 장면과 한국의 모습은 그럴 듯 하지만, 한의 추적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한숨이 나올 정도로 유치하고 맥이 풀립니다. 몇몇 장면의 긴장감은 매우 뛰어나지만 장면만 뛰어날 뿐, 전개와 구성은 형편없을 정도입니다. 다양한 미장센과 총격전과 사운드는 뛰어나다 볼 여지가 있지만 이마저도 넷플릭스 환경에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효과음은 크고 인물들의 대사는 작아서 볼륨 조절에 어려움이 생기죠. 연출도 전반적으로 너무나 허술합니다. 붉은 조명도 뭘 의미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냥 눈이 아플 뿐이죠.

 

  무엇보다 나빴던 것은 역시 각본입니다. 이야기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데 이걸 하나도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요. 넘어가는 만큼 후반부가 충실한가 하면 그냥 저질 신파로 점철하고 결말에서는 황당함만 줄 뿐이죠. 각본이 이렇게 얄팍하니 영화가 제대로 될 일이 있을까요?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한 '준석' 역의 이제훈

  배우들의 연기는 절정에 가까웠습니다. 이제훈은 역시 대단했습니다. <파수꾼>에서도 그랬고 <박열>에서도 그랬지만 이제훈은 대단한 배우입니다. 안재홍 역시 자신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 식상한 신파 장면에서 어떻게든 그걸 살려보려는 이제훈과 안재홍의 호흡은 좋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비참하게 무너진 캐릭터 '한'을 연기한 박해수는 거의 인간문화재 급으로 캐릭터를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 비해서 배우들의 열연이 아까울 정도였어요. 박정민의 캐릭터는 그냥 조연에 가까운 데다 보여줄 것도 없었습니다. 박정민 배우는 그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최근 영화 운이 따르지 않는 것 같군요.

 

  어설프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따라 하려다 본전도 건지지 못한 <사냥의 시간>은 그래도 적당히 볼만한 스릴러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허술하고 부족한 부분이 보이기는 해도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볼많한 부분들이 있어요. 9년의 시간이 윤성현 감독의 재능을 갉아먹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습니다. 믿기 힘들 정도의 변화라 생각합니다. 그분의 영화라 하기에 <사냥의 시간>은 너무나 진부하고 허술했어요. 특별할 것 없는 양산형 스릴러에 불과했습니다. 

 

한 줄 평가: 내 시간이 사냥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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