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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od Movies/액션

<레디 플레이어 원> _ 그 시절 최고의 히어로들이 만든 문화를 향한 찬사

by 브리즈B 2020. 3. 30.

< 레디 플레이어 원, 2018 >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타이 셰리던, 올리비아 쿡, 벤 멘델존

장르: 액션 / 미국 / 블록버스터, 우정, 모험, SF

 

2045년, 암울한 현실과 달리

가상현실 오아시스(OASIS)에서는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으며 상상하는 모든 게 가능하다.

웨이드 와츠(타이 셰리던) 역시 

유일한 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를 보내는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것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 예고편

 


 

" 레디 플레이어 원 짚어보기 "


  <레디 플레이어 원>은 덕후들을 위한 추억팔이 영화입니다. 1980년대를 그리워하는 작가 어니스트 클라인이 그 시절의 대중문화를 마구 집어넣어서 만든 소설이 이 영화의 원작입니다. 그래서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죠. 덕후들을 위해서 대중문화나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장대한 추억팔이, 그리고 축제가 바로 이 영화입니다. 대중문화 자체에 대한 찬사라고 할 수 있죠. 이 영화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그것입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말하자면 꿈의 실현입니다. 앞서 말한 이 영화의 본질이 추억팔이에 있지만, 영화의 상상력 역시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아바타>, <공각기동대>, <매트릭스>같이 가상현실과 현실의 문제를 다룬 작품은 얼마든지 있죠. 영화는 앞에서 다룬 가상현실과 현실의 문제, 아바타와 나의 문제,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기준과 가치에 대한 논의는 집어치우고 한 발 더 나아간 세계를 보여줍니다. 일종의 '선언'과도 같은 작품이죠. 우리는 가상현실이니, 가짜와 진짜의 구분과 가치의 문제에 익숙하거든요. 이제 다음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이 지나간 대중문화 전체를 가져와서 화려하게 전시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80년대의 찬란했던 대중문화의 시작, 그 무수한 역사 너머에 지금의 시대가, 그리고 <레디 플레이어 원>이 그리는 미래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무수한 대중문화 코드를 모조리 쏟아부은 이 영화, 셀 수 없이 많은 캐릭터와 오마주와 이야기가 난사하는 영화는, 대중문화 덕후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신이 내린 선물임에 틀림없죠. 따라서 이 영화는 가볍게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스필버그가 준비한 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고 80년대 이후를 살아온 모두에게 건네는 가벼운 선물이니까요. 대중문화를 향한 찬사, 오직 스필버그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 <레디 플레이어 원>입니다.

 


 

※ 주의 ※

본 포스팅은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이며 

단순히 제 의견이 틀리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다소 부족하지만

다름을 근거로 한 냉정한 비판은 괜찮으며

본 리뷰에 앞서 영화 내용을 다룰 것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읽어주시기를 권장합니다.

 


 

" 두 세계의 스티븐 스필버그 "


'오아시스' 게임 제작자 제임스 홀리데이

  스티븐 스필버그가 오랜만에 순전히 오락에 전념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주 무대가 되는 게임 ‘오아시스’가 영화의 은유이자, 제임스 할리데이가 스티븐 스필버그 자신을 투영시킨 분신임을 알아차리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죠. 이 영화의 주인공 역할은 웨이드가 맡고 있지만, 그가 하는 행위 대부분은 제임스 할리데이 개인의 일생과 그가 만든 게임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웨이드가 모든 퀘스트를 마쳤을 때, 제일 먼저 이미 늙어 죽은 제임스 홀리데이와 어린 시절의 제임스 할리데이의 재회하는 순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소년의 감성으로 <미지와의 조우>, <E.T.>, <인디아나 존스>, <쥐라기 공원>을 만들었던 젊은 시절의 자신을 돌아본 스티븐 스필버그 본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제임스 홀리데이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분신임을 인지한 순간부터 할리데이의 세 가지 퀘스트는 이중적으로 읽히게 되죠.

 

홀리데이 저널을 시청하는 게이머들

  우선 표면적으로 할리데이의 퀘스트를 보면,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할리데이의 욕구가 무엇보다 강하게 드러나 보입니다. 퀘스트가 시작된 순간, 생겨난 할리데이 저널은 게이머들로 하여금 할리데이 자신의 일생을 되짚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어진 공간으로 게이머들이 힌트를 발견하기 위해 끝도 없이 자신의 영상 일기들을 반복 감상하도록 조성되어 있죠. 여기서 얻은 힌트를 바탕으로 게이머들이 퀘스트를 진행하는 과정은 할리데이 자신이 일생에서 후회하는 선택들을 게이머들이 그를 대신하여 바로잡는 과정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드벤처'의 이스터에그를 발견하는 마지막 퀘스트는 바로 그 일생을 살아왔으며 게임을 만든 제임스 할리데이 자신을 게이머들이 알아주기를, 나아가 자신이 했던 실수를 게이머들이 되풀이하지 않고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주기를 설득하는 셈이죠. 

 

  그렇지만 제임스 할리데이를 스티븐 스필버그로, 오아시스를 영화로 치환하면 위의 과정을 조금 달리 보게 됩니다. 우선 퀘스트 진행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작업인 할리데이 저널 씬들을 보면, 주인공의 아바타 퍼시발을 비롯한 극 중 인물들이 할리데이의 일생의 한 장면을 골라서 반복 감상합니다. 그 장면은 인물들 앞에 놓은 3D 스크린 위에 영사되는 하나의 플래시백 롱테이크 숏이죠. 인물들은 그 숏을 뒤로 되감아 보고 앞으로 돌려 보고 멈춰서 꼼꼼히 뜯어봅니다. 결국 그들이 하는 작업은 할리데이의 인생이라는 영화를 ‘반복 감상 및 분석'을 시도하는 과정인 셈이죠. 여기서 인물들은 앵글과 줌 등을 조정하며 ‘카메라’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 할리데이의 의도가 담긴 퀘스트 "


IOI 레이싱 참가 중인 퍼시발

  주인공 퍼시발은 플래시백으로 하나의 롱테이크 숏에 대한 분석을 통해 첫 번째 퀘스트의 해결 방법을 알아내죠. 그 해결 방법은 ‘후진’이지만 사실 단순한 후진이 아닙니다. 그저 후진하는 게 답이면 후진해서 바로 결승점에 이르는 식의 연출도 가능했겠죠. 그러나 퍼시발이 후진을 시도하는 순간, 퍼시발은 그 레이싱 트랙의 구조를 파악하게 되고 결승점에 이릅니다. 이는 관객들이 숏에 대한 분석을 통해 영화의 구조를 파악하고 영화의 제작 방식을 인지하게 되는 과정과 유사하죠.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속 '오버룩' 호텔을 오마주한 장면

  두 번째 퀘스트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합니다.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샤이닝>의 타자기 씬, 복도 씬, 엘리베이터 씬, 노파 씬, 미로 씬, 오버룩 호텔의 사진이 등장하는 씬 등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며, 영화 속 숏과 그 게임 속 숏의 차이를 인지해야 하죠. 할리데이 저널의 숏 분석에 이어 <샤이닝>의 숏 분석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도 하죠. 또한 퀘스트는 첫 번째 퀘스트를 거쳐온 인물들이 함께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시작되고 그때부터 ‘극장’은 <샤이닝> 속 ‘오버룩 호텔’이 되고 게이머들은 영화 속 상황들을 체험하게 됩니다. 결국 이 퀘스트는 ‘극장이란 공간에서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행위’, '영화를 관람한 이들이 같이 본 영화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분석하며 감상을 나누는 행위’와 직결되어 있는 퀘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제임스 할리데이

  세 번째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드벤처’의 이스터에그를 발견하여 그 결과로 제작자의 이름을 보고, 나아가 할리데이가 가장 후회하는 일을 바로잡는 테스트를 거친 뒤, 죽은 할리데이가 어린 할리데이와 재회하는 순간을 목도해야 합니다. 관객이 감독과 진정한 소통에 이르는 순간이죠. 
  결국 할리데이의 세 가지 퀘스트는, 관객이 영화를 반복 감상하고 숏을 뜯어봄으로써 우연히 영화의 구조를, 카메라의 존재를, 영화의 제작 과정을 인지하게 되고, 다른 관객들과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그 감상을 나눔으로써 그 희열을 공유하고,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감독과 진정으로 소통하기에 이르기까지의 단계를 밟아갑니다. 감독과 진정한 소통에 이른 순간, 감독은 관객들에게 말합니다. “Reality is real.” 이 모든 과정 끝에 이른 순간에도 현실과 영화의 간극을 망각하지 않았다면, 마침내 그 사람은 자신의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된 거죠(오아시스의 지배자가 된다).

 


 

" 놀란과 웨이드 "


슈트를 착용하고 게임에 접속하려는 놀란

  그런데 이 모든 퀘스트를 깨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주인공 웨이드 일행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대척점에 선 놀란이란 인물 역시 그 퀘스트를 깨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죠. 놀란은 일견 전형적인 서사 상의 전형적인 악역입니다. 게임을 돈벌이로밖에 보지 않는, 그래서 자신의 비밀번호조차 똑바로 외우지 못하는, 대중문화에 대해서도 좀처럼 이해하려 들지 않는 인물이죠.

 

왼쪽이 아이락, 오른쪽이 놀란의 아바타

  그러나 그 캐릭터에는 어딘가 의구심이 드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X1 슈트를 비롯해 그가 내놓은 상품들은 오아시스의 게이머들의 필요에 완벽히 부합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래에서 열심히 시장을 분석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놀란 역시도 오아시스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의 심리를 상당히 잘 파악하고 있죠. 무엇보다도, 게임을 단순히 돈벌이로만 여긴다면, 굳이 놀란이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그 안에서 아이락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는 등의 번거로운 작업을 할 이유가 없겠죠. 게임을 구성하는 대중문화에 별 흥미가 없고, 심지어 비밀번호도 못 외우는 마당에, 게임에 매료되어 있는 다른 중간자들을 이용하면 될 것이지. 그 번거로운 슈트를 착용하며 번번이 게임에 접속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게다가 영화는 놀란이 오아시스 바깥에서 피날레라는 인물에게 별도의 임무를 주는 모습을 연거푸 보여주는데, 이를 보다 보면 놀란이 굳이 게임에 접속하는 행위는 더더욱 불필요해 보입니다.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웨이드

  어쩌면 놀란이 오아시스에 대해 가지는 욕망은 조금 다른 건지도 모릅니다. 놀란은 게임에 대한 애착과,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입니다. 그는 게임도 결국엔 현실에 맞닿아 있는 문제임을 인지하고, 그쪽을 파고들려다가 광기에 사로잡혀 버린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광기에 사로잡혀 있기로는 표면적으로 선의 역할을 맡고 있는 웨이드도 만만치 않죠. 그의 눈앞에서 자신과 이모가 살던 트레일러가 폭발했고, 이모는 그 안에서 폭사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웨이드가 그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이모의 생사를 확인하는 일도 아니고, 경찰이나 911에 신고하는 일도 아니고, 자신이 공격당했음을 알리려고 오아시스에 재접속하는 일을 먼저 합니다. 웨이드에게 사실상 오아시스 바깥의 현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죠. 놀란은 결국 웨이드를 정반대로 뒤집은 모습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 소년과 성인의 만남 "


  스필버그는 근작 <스파이 브리지>와 <더 포스트>에서 서로 대비되는 가치를 표방하는 숏이나 씬들이 충돌됨으로써 주인공들의 통념이 시험받는 상황들을 연출한 바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은 웨이드로 대표되는 그 일행들의 숏들과 놀란으로 대표되는 IOI의 숏들과 씬들을 계속해서 충돌시키죠. 웨이드와 놀란은 모두 오아시스라는 세계에 그리고 영화라는 세계에 그 누구 못잖은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걸맞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과 웨이드가 완전히 꿈의 세계에 천착해 있는 인물이라면, 놀란은 그 꿈마저도 현실의 거울이라고 보는 인물이죠. 영화는 그 둘의 세계를 계속해서 충돌시키더니 “Reality is real.”이라는 홀리데이의 말이 울려 퍼지는 순간에서야 둘의 세계가 하나의 씬 안에 공존하도록 합니다. 그 말은 그 두 인물 모두에게 유효하기 때문이죠.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되어 왔다는 걸, 그의 영화를 꾸준히 지켜본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죠. 한쪽이 소년의 시각으로 바라본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모험의 세계로 구현되어 왔다면, 또 한쪽은 성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현실의 고통, 추함, 갈등, 투쟁, 가치의 혼란 및 전복 등을 오롯이 떠안고 있는 세계입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홀리데이가 만든 거대한 세계 '오아시스'를 스필버그의 영화 세계로 치환시켜 보면, 오아시스의 지배권을 놓고 격돌하는 웨이드와 놀란은 어쩌면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가 뻗어온 두 갈래의 길을 각각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웨이드가 소년 스필버그의 세계를 대변한다면, 놀란은 성인 스필버그의 세계를 대변하죠.

 

밴(ban) 안에서 게임하는 웨이드

  영화 후반부, 웨이드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특수 아이템의 영향으로 캐릭터가 삭제되고 웨이드만 게임 속에 남습니다. 그리고 웨이드는 계속해서 H의 밴(ban) 안에서만 오아시스를 플레이하고 있죠. 오아시스라는 광대한 공간이 H의 밴이라는 공간과 동일시된 것입니다. 밴 안의 세계와 밴 밖의 세계는 오아시스 안의 세계와 오아시스 밖의 세계처럼 분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듯 웨이드의 마지막 퀘스트는 강제로 그 밴의 문을 열었던 피날레가 밴 바깥으로 나가떨어짐과 동시에 완료됩니다.

 

웨이드를 대면하러 나온 놀란

  그 밴의 문이 이후 다시 열리는 순간은 바로 놀란과 웨이드가 처음으로 실제로 대면하는 순간이죠. 밴의 문 안과 밖에서, 오아시스 안과 밖에서, 영화 안과 밖에서, 영화에 매료되어 그 꿈에 빠져든 소년과 그 영화를 거울삼아 현실을 비추어 보던 어른이 만난 셈이죠. 그리고 그때 오아시스 안에선 성인이 되고도 시간이 흘러 늙어 죽은 할리데이(성인 스필버그)가 어린 할리데이(소년 스필버그)와 대면하고 있습니다. 두 할리데이는 웨이드와 놀란에게 공통된 조언 “Reality is real.” 현실과 영화의 균형을 찾으라는 말을 남기고 함께 문밖으로 나섭니다. 그들이 남긴 이스터에그를 받고 웨이드가 흘리는 눈물을 본 놀란은 그를 겨누던 총구를 내려놓고 찬란히 빛나는 영화의 광채에 새삼 다시 매료됩니다.
  경찰과 오그던이 등장하여 놀란의 체포나 오아시스의 소유주를 논하며 마무리를 짓는 부분은 밴의 문이 한 번 닫힘으로써 영화가 한 번 닫히고 그 뒤 다시 밴의 문이 열린 뒤의 에필로그에 불과하므로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필버그가 자신의 원점으로 돌아가 영화 본연의 재미와 그 영화에서 처음 숏을 발견하고 다른 이들과 감상을 나눌 때의 희열, 처음 카메라를 잡기까지의 설렘을 한꺼번에 담아낸 듯한 바로 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두 세계의 스필버그가 드디어 서로를 마주 보게 된 거죠.

 

한 줄 평가: 가슴 속에 자리잡은 추억을 일깨우는 영웅들의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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