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잠시 쉬었다 가세요"
The Good Movies/코미디

<언컷 젬스> _ 산란하고 찬란한 탐욕의 보석

by 브리즈B 2020. 3. 8.

 

< 언컷 젬스, 2019 >

 

감독: 베니 샤프디, 조슈야 샤프디

출연: 아담 샌들러

개요: 코미디 / 미국 / 블랙 코미디, 범죄

 

빚더미에 올라앉으니,

빚쟁이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는

뉴욕의 보석상 하워드 래트너(아담 샌들러).

입만 살아 떠드는 그가

진정 살길을 모색한다.

한탕에 모든 것을 건다.

 


 

" 언컷 젬스 짚어보기 "


  <언컷젬스>는 대사의 풍성함이나 입체감의 측면에서 완벽한 감흥을 주는 유형의 작품들과 궤를 달리 하는 작품입니다. 영화의 메인 스토리라고 해봤자 이도 저도 못하는 인물이 빚으로 다른 빚을 돌려 막는 반복적인 내용이 전부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언컷젬스>에서 그런 초라한 줄거리를 압도하는 영화 자체의 감흥이 충만합니다. 감상 후에 이어질 긴 여운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2시간이란 상영시간 동안 감흥을 간과하기 십상인 영화들이 아트하우스 시장을 주름잡는 이 시점에서, <언컷젬스>와 같이 장르성이 짙은 작가주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반갑기만 합니다.
  매 순간마다 산만하고 시각을 자극하는 카메라의 포커싱과, 마치 이명처럼 귓가를 때리는 사이키델릭 사운드는 결코 영화의 나쁜 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난잡한 시청각 요소의 중첩은 이도저도 못하고 궁지에 몰린 인물을 그려내기 위한 형식적인 선택에 가깝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하워드 래트너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부여잡습니다. 오직 한탕을 노리기 위해. 어쩌면 그는 시작부터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에 올라타 피니시 라인을 향한 도로 위에 놓여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복권이나 도박처럼 우리에겐 내일이 있고 혹시 내일 복이 올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신을 희생합니다. 중독의 길을 밟으면 그때부터 단순히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상적인 인생을 원하죠. 본인의 살이 깎여나가는 줄도 모르고.

 


※ 주의 ※

본 포스팅은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이며 

단순히 제 의견이 틀리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다소 부족하지만

다름을 근거로 한 냉정한 비판은 괜찮으며

본 리뷰에 앞서 영화 내용을 다룰 것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읽어주시기를 권장합니다.

 

" 빙글뱅글 돌아가는 악천후 "


 

 

  보통 영화의 플롯엔 등장인물이 서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메인 임무가 있기 마련입니다. 본 영화의 경우엔 하워드가 아르노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 임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메인 임무와 서브 임무들 간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무너지기 직전의 부부관계, 케빈 가넷의 오팔에 대한 과도한 집착, 뜻하지 않게 어긋난 경매, 줄리아와의 내연관계 등등 불시로 난입하는 작은 문제들은 결국 하워드가 아르노에게 돈을 갚아야 하는 영화의 주된 목표에 균열을 일으켜 각 임무들 간의 중요도를 판별하기 힘들도록 하워드를 수시로 교란합니다.
  마치 쉬지 않고 잽을 날리는 듯한 영화의 플롯은 결국에 빚으로 빚을 해결하는 결단으로 최악의 결말을 일시적으로 회피하는 하워드를 흥미롭게 보여줍니다. 따라서 영화의 시청각적 울렁거림은 그저 스타일의 과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악화된 상황을 점차 중첩하는 영화의 산만한 플롯과 조응하며 더 나아가 그러한 플롯이 파생시킨 주인공의 심리적 어지럼증과 완벽히 일치하지요. 

 


 

" 한시도 쉬지 않는 호흡 "


  <언컷젬스>의 주목할만한 요소 중 하나는 영화가 기승전결을 부정하고 시종 ‘결’에 해당하는 들끓는 감정으로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훌륭한 완급조절을 해내었다는 부분입니다. 하워드의 미련한 도박적인 선택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에 불과한 단조로운 서사나 혹은 플롯이 물리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감독 샤프디 형제의 연출에 있습니다. 하워드가 벌인 일이 점차 꼬인다는 상황은 매번 똑같지만, 감독은 그 반복적인 상황을 매번 다른 스타일로 변주하지요.
  딸아이의 공연을 관람하던 도중에 벌어지는 한 바탕의 추격전, 오팔을 돌려주러 온 케빈 가넷의 앞에서 갑자기 열리지 않는 문을 활용한 대목, 그리고 짜릿한 마지막 클라이맥스까지. 영화는 이 세 번의 장면에서 제각기 다른 형태의 서스펜스를 구사합니다.

 

 

두 번째 시퀀스. 스위치가 작동하지 않고 문이 안 열려 가관이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장면들 중, 특히 두 번째와 세 번째 장면 연출은 기가 막힙니다. 첫 번째 장면 중 넓은 공간에서 추격의 서스펜스로 마무리 지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두 번째로 언급한 케빈 가넷과의 에피소드에서 영화는 서스펜스의 장소를 하워드의 가게, 즉 밀실로 교체합니다. 케빈 가넷이 하워드의 가게에 도착하기 직전, 하워드에게 여러 통의 전화가 수없이 빗발칩니다. 그리고 그 경황없는 상황에 대해 영화는 정신이 산만할 정도의 빠른 편집으로 진행하며 하워드의 혼란스러운 내면에 관객을 동화시킵니다
  그런데 케빈 가넷이 하워드의 가게에 도착하는 순간 연출 스타일은 다시 한번 변화합니다. 그리고 카메라의 패닝을 통해 숏의 길이를 대폭 연장하지요. 속도감 있는 편집에서 스위시 팬을 이용한 느린 편집으로 리듬 전환까지. 그리고 이와 더불어 충돌하는 서로 간의 대화, 좀처럼 열리지 않는 답답한 문, 집중을 방해하는 소음 등을 활용하여 악조건을 추가하는 플롯. 한 시퀀스 내에서 리듬을 전환시키며 씬의 모든 요소를 컨트롤하는 감독의 존재감을 보고 있자면 정말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장면인 클라이맥스 시퀀스. 여기서 또 다시 서스펜스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이 마지막 시퀀스가 구사하는 서스펜스의 핵심은 다름 아닌 시점의 전환입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기 위해 클라이맥스 시퀀스 조금 전에 등장하는 경매 장면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팔을 차지하기 위해 경매에 참여 중인 케빈 가넷

 

  하워드가 자신의 아버지를 동원해 오팔 하나를 놓고 경매장에서 케빈 가넷과 눈치싸움을 하는 순간은 시끄럽기만 하던 동적인 상황에서 정적인 긴장감으로 리듬을 전환하였다는 지점에서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입의 대상을 은연중에 교체하였다는 점에서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다지 애착이 가는 인물은 아니지만, 우리는 영화 내내 하워드의 행보를 응원합니다. 그는 관객이 이입해야 할 동일시의 대상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경매 장면에서 우리는 하워드가 아닌 하워드의 아버지에게 이입합니다. 우리는 케빈 가넷이 보다 더 과감한 배팅을 하길 바라며 무고한 하워드의 아버지가 하워드의 꾀에 넘어가 돈을 잃지 않기를 바라지요. 영화의 주된 이입의 대상은 하워드임을 전제하되 영화는 이 틈에서 이입의 대상을 잠시 전환하여 극을 보다 다채롭게 환기시킵니다. 이는 하워드 아버지의 이득이 영화의 주된 몰입의 대상인 하워드의 이득과 연결되었기에 가능한 전략이라고 봅니다.

 

 

하워드가 창 너머로 줄리아한테 오팔을 팔아서 얻은 거액의 돈가방을 넘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앞서 잠시 보여줬던 이러한 전략을 극대화하여 효율을 발휘합니다. 하워드, 줄리아, 그리고 케빈 가넷. 영화는 이입의 대상을 마구 바꾸며 장르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극적인 오락을 선사하지요. 먼저, 아르노의 패거리가 또 다시 하워드의 가게로 찾아옵니다. 여기서 관객이 느낄 불안이나 긴장감은 금세 질리기 십상입니다. 아르노에게 협박당하는 하워드의 모습은 우리가 영화 내내 봐온 것이니까. 하지만 영리하게도 영화는 여기서 구도를 신선하게 뒤바꿉니다. 농구 경기에 베팅할 돈이 담긴 가방이 하워드의 손에서 줄리아의 손으로 이동하는 순간, 여기서 바통터치가 일어난 셈이고 이제부터 인물 이입의 릴레이가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하워드가 아르노 일당을 입구에 가둬버렸다

 

  아르노에게서 하워드가 무사하길 바라는 심리는 이제 아르노의 부하들로부터 줄리아가 잡히지 않기를 바라는 공범심리로 전환됩니다. 하지만 이처럼 바통이 줄리아에게로 넘어간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필요에 따라 하워드에게로 다시 바통을 재차 전달하길 조금도 꺼리질 않습니다. 추격전의 스릴이 다해질 무렵, 영화는 다시 하워드의 가게로 이동해 하워드가 아르노와 그 외 잔당들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묘사하지요. 다시 똑같은 공간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또다시 상황은 바뀌어 있습니다. 앞서 하워드가 그들에게 협박을 당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 하워드가 그들을 입구에 가둬버리며 그들을 조롱하지요. 이때 관객의 입장에서 서스펜스를 느끼게 되는 심리적 요인은 이전처럼 하워드가 당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지나치게 과감한 행위의 주체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컷젬스>는 유사한 상황을 반복 배치하고 있지만 절대 서스펜스를 게으른 방식으로 자아내지 않습니다.

 

 

케빈 가넷이 자유투 하는 모습

 

  하워드와 줄리아. 두 주자가 몫을 다했으니 이제 또 다른 주자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바로 케빈 가넷이지요. 다소 생뚱맞은 지점이지만 케빈 가넷 또한 이입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 당일 경기에서 그의 개인 점수가 곧 줄리아, 그리고 주된 이입의 대상인 하워드의 이익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앞서 하워드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말이지요. 하워드가 줄리아에게 돈가방을 넘겨주는 장면에서 돈가방을 바통으로 보자면, 케빈 가넷이 그 돈가방과 오팔을 동등한 가치로 보고 맞바꾼 행위는 오팔 역시 하나의 바통이 될 수 있지요. 경기 직전 라커룸에서 케빈 가넷이 오팔을 손에 쥔 채 뚫어지게 바라보는 순간 또다시 긴장감의 유형이 뒤바뀝니다.
  하워드가 무사하고 줄리아가 잡히지 않길 바라는 관객의 심리는 어느새 스포츠경기를 관람하는 관중의 심리로 바뀌어 있습니다. 다소 뜬금없게도 이제부터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건 케빈 가넷의 점프볼과 리바운드, 득점, 그리고 더 나아가 보스턴 셀틱스의 승리입니다. 각자의 이득이 곧 공동의 이익인 하나의 목적을 향해 전혀 다른 세 가지 감정으로 전진하는 이 삼중의 서스펜스 구도는 보는 입장에서 그저 감탄밖에 없지요. 

 


 

" 벗어날 듯 벗어나지 못한 "


  주인공 하워드와 가족과 유사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르노는 가족이 아닌 채권자의 입장에서 시종 그를 들볶기만 할 뿐입니다. 명백히 가족이란 집단 내에 있는 하워드의 아버지 역시 하워드의 무리한 요구에 응했다가 괜히 금전적 손해를 보고 맙니다. 아내와 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워드는 딸아이와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으며 자신의 아내에게 가정의 유지를 위해 구차하게 매달리지만 아내는 하워드를 매정하게 거절할 뿐이지요. 여기서 흥미로운 인물이 하나 있다면 바로 가족 외부의 인물인 줄리아입니다.

 

 

하워드와 줄리아는 대판 싸우고 클럽을 벗어난다

 

  하워드가 옷장에 숨어 줄리아를 몰래 지켜보며 그녀와 문자를 주고받는 장면은 우리에게 줄리아의 숨겨진 다른 남자가 불시에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순간의 불안감을 자아냅니다. 이 순간의 불안을 잠시 끌고 간 영화는 잠시 후 클럽 내의 화장실 장면에서 그 불안을 다시 자아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줄리아는 우리의 불길한 예상을 실현시키지 않습니다. 그녀는 다른 남성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오로지 하워드만을 바라보지요.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건 하워드가 그녀의 순수함을 오해한 채 자신을 거부하는 가족에게 발길을 돌렸다는 사실입니다. 하워드는 아내에게 매달리다 쫓겨난 것과 달리 후에 자신에게 매달리는 줄리아에 폭언을 아끼지 않으며 그녀를 냉정히 쫓아냅니다. 하워드와 줄리아가 클럽을 빠져나와 싸운 뒤 서로 제 갈 길을 가는 시점에서, 우리에게 굉장히 이질적인 하나의 트래킹 숏이 등장한다. 바로 영화 시작부터 계속 하워드만을 쫓아다녔던 카메라가 이번엔 하워드가 아닌 서럽게 울며 다시 클럽 쪽으로 돌아가는 줄리아에게 향했다는 점에서 해당 트래킹 숏은 의외의 선택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서로 사랑하는 하워드와 줄리아

 

  뜬금없이 줄리아를 따라간 영화는 이전부터 자주 쓴 몽환적인 음악까지 삽입합니다. 극중 이 몽환적인 배경음이 사용되는 맥락은 하워드가 심적으로 혼란의 감정을 느낄 때가 대다수이지요. 그 말인즉슨 특유의 음악까지 첨가하며 뜬금없이 줄리아에게로 향하는 해당 트래킹 숏은 하워드와 줄리아를 동등한 위치로 엮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워드는 자신의 가족에게만 집착하지만 정작 그를 바라보며 그와 같은 심리적 통증을 겪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줄리아인 것이지요. 실제로 하워드는 줄리아를 비롯하여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하워드가 결국 베팅에서 잭팟을 터트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줄리아의 편으로 돌아섰기에, 그가 정말 의지해야 할 사람을 제대로 식별해낼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언컷젬스>는 서로가 서로를 옭아매던 가정에서 벗어나 가정 외부의 인물로부터 내면의 구원을 얻은 한 남성의 가정 탈출기에 대한 서사로 보이기도 합니다.

 

 

비극의 시작. 오팔.

 

  그러나 <언컷젬스>를 구원의 서사로 부르기엔 크게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하워드가 감정적 고점에 취해있을 무렵 매정하게도 영화가 그의 안식을 비극의 방식으로 선사했기 때문이지요. 그 비극을 시작부터 예정된 필연이라 볼 수 있는 이유는 유대인 혈통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가정의 안정을 원했던 하워드는 동시에 유대인 혈통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런데 영화 내내 하워드와 그가 신뢰하는 대상이 좀처럼 화합할 수 없었던 것처럼 혈통 역시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혈통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정작 자신의 직계 혈통인 부모의 의학적 가족력 때문에 불안에 떨며 수시로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이지요. 의미심장한 프롤로그와 더 의미심장한 프롤로그 직후의 내시경은 바로 이 혈통이란 모티브 하에 서로 묶이고 있습니다.
  후에 등장하는 정보에 근거했을 시 우리는 프롤로그에 등장한 오팔을 캐는 에티오피아인 광부들이 실은 하워드와 같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프롤로그와 오프닝을 매개하는 이 내시경 장면은 유대인 혈통의 인물들(에티오피아 광부)과 그 유대 혈통을 자랑스러워하나 은근히 그 혈통에 피해를 입고 사는 또 다른 유대인 혈통의 인물(하워드)을 이어주니까요. 그렇게 끝까지 혈통의 우수함을 믿었던 하워드는 프롤로그의 사내처럼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구원의 서사로 보였던 영화의 이야기는 필연에 가까운 허무주의로 막을 내립니다.

 

한 줄 평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야말로 마르지 않는 욕망으로 채워졌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