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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od Movies/미스터리

<나이브스 아웃> _ 뻔한 추리 영화가 아니다!

by 브리즈B 2020. 3. 29.

 

< 나이브스 아웃, 2019 >

 

감독: 라이언 존슨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아나 드 아르마스, 돈 존슨, 제이미 리 커티스, 크리스 에반스, 토니 콜렛, 캐서린 랭포드, 마이클 섀넌, 러키스 스탠필드, 크리스토퍼 플러머, 제이든 마텔, 에디 패터슨

장르: 미스터리 / 미국 / 코미디, 추리, 풍자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 할런 트롬비가

85세 생일에 숨진 채 발견된다.

그의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경찰과 함께 탐정 브누아 블랑이 파견되는데..

 


 

 


 

" 나이브스 아웃 짚어보기 "


  <나이브스 아웃>은 추리 영화이긴 하지만, 꽤나 사회 정치적 성향이 강하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나이브스 아웃>은 꽤나 사회적이죠. 영화는 초반부터 마르타가 이민자라는 걸 강조시키는데, 추리물의 긴장감이 다해지는 무렵마다 끊임없이 부르주아 계급층들로 하여금 사회 전반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도록 만듭니다. 에콰도르, 우루과이, 브라질 등등 겉으론 마르타를 위하는 척 하지만 실은 그녀의 진짜 국적조차 알지 못하는 상류층 인물들의 위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좌우 세력 간의 토론, 인물들 간의 계급적 지위를 180도 전복시켜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엔딩 등등 이 정도면 추리 영화이기 이전에 계급을 통해 미국인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하나의 사회 실험극으로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주의 ※

본 포스팅은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이며 

단순히 제 의견이 틀리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다소 부족하지만

다름을 근거로 한 냉정한 비판은 괜찮으며

본 리뷰에 앞서 영화 내용을 다룰 것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읽어주시기를 권장합니다.

 


 

" 할런은 진작에 사후 비극을 예측하고 있었다 "


  계급적 우화가 잘 녹아든 반면, 한 편의 추리 영화로서 <나이브스 아웃>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습니다. 연출도 좋고 연기도 좋지만,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싶은 부분은 영화의 각본입니다. <나이브스 아웃>의 각본은 범인을 찾는 밀실 서스펜스 영화가 요즘 시대에 별 특별한 게 있을까 라는 관객의 예상과 염려를 가볍게 무시하죠.

 

  이 영화는 보면 볼수록 굉장히 재밌는 부분들이 많게 되는데 초반에 오목 두는 장면이 흥미롭게 되어 있습니다.  추리소설 작가인 할런 트롬비는 오목을 잘 두는 것으로 나오는데 자신의 간병인 마르타에게 번번이 오목을 지게 되자 오목판을 엎어버리고 그것을 지진에 비유해서 말하죠. 말하자면 오목을 두는 씬에서 나오는 대사는 영화 전체에 대한 밑그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오목 게임 자체가 할런이 살아온 삶이라고 느껴집니다. 게임을 할 때마다 할런은 자신이 게임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또 사회적으로 거대한 성공과 부를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85세가 되고 보니 자신이 잘못 산 것을 깨달은 것, 그런 상황에서 현재의 자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과거에 자신이 잘못했던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모종의 결심을 하게 되고 그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이야기죠. 

 

회상 장면 중, 주사를 잘못 놓은 마르타

  초반 20분가량은 우리에게 익숙한 구도가 제시됩니다. 의문의 살인사건, 잘은 모르겠으나 왠지 비범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탐정, 거짓말을 하는 3명의 용의자. 관객의 입장에서 탐정 블랑과 합심하여 3명 중 누가 범인인지를 검토하던 도중에 영화는 판을 180도 뒤엎어버립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플래시백, 즉 회상에 근거했을 시, 관객이 봤을 때 범인은 마르타였다는 뜬금없는 실체가 곧바로 공개됩니다. 미스터리에 기반을 두어 추리극을 이끌어오던 영화는 이를 기점으로 하나의 서스펜스 극으로 급격히 틀어버리죠. 또한 이 플래시백 기법을 통해 가족들의 진짜 관계를 보여줘 꽤나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 날카롭고 우스꽝스러운 풍자 "


심문에 참여 중인 할런의 가족들

  블랑 탐정과 형사들이 가족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용의자 가족들이 진술할 때마다 플래시백의 상황과 어긋납니다. 즉, 가족 전체가 계속 거짓말을 하죠. 이런 진술의 차이가 가족들의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그렇다면 왜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를 보여줍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이 사람의 진술이 진실일까 거짓일까를 물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에서는 이 사람이 왜 거짓말을 할까를 물어봅니다. 아마도 이 부분에서 정치적인 밑그림이 있구나 하고 볼 수 있죠. 

 

할런 트롬비의 대저택

  이런 영화가 흔히 그런 것처럼 '집'은 어디에 비유가 되는데, 영화 속 대저택은 사실상 미국을 상징합니다. 이 대저택을 가족들은 당연히 자신의 유산으로 생각하지만 과연 이 저택이 누구에게 가는지, 누가 그 수혜를 입을 것인지가 이야기상으로 재밌으면서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는 부분이죠. 

 

마르타로 향한 유산 상속에 불만을 가지는 할런의 가족들

  블랑과 함께 사건을 추리하던 관객은 이제 마르타의 편에 합류하여 블랑의 수사가 더디기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할런의 유언장과 상속권이 공개됨으로 인해 '할런의 편에 선 마르타 vs 미지의 인물에게 고용된 블랑' 이었던 영화의 구도는 '마르타 vs 저택의 식구들'의 구도로 급전환되죠. 이 구도가 진정 흥미로운 까닭은 이러한 대결이 단순히 개인과 다수 간의 대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저택의 식구들 사이에서도 좌우로 편이 나누어져 삼파전의 구도가 형성됩니다. 
  또한 에 관해 굉장히 재미있는 비유가 집에 관한 가족들의 말에 탐정 블랑이 받아치는 대사에 있습니다. 블랑: "기가 막히는군요. 할런은 이 집을 80년대에 샀어요. 파키스탄인 재벌에게 샀죠!" 이 대사에서 보듯이 미국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세운 나라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죠. 미국 백인들은 이 땅을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인들한테 자신들의 땅이 된 것이 불과 3,4백 년 밖에 되지 않았고 그 이전에는 인디언의 땅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할런의 가족들은 미국 백인들 대표로 비유되어 할런 트롬비가 마르타에게 유산 상속을 한 장면에서 자기네 집이라고 우기죠. 이 장면에서 마르타의 존재는 미국인들의 위선을 드러내게 유도하는 존재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나중에 이 집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에 따라서 그 대사들은 날카롭게 현재 미국을 비꼬는 대사라고 할 수 있죠.

 


 

" 마르타 VS 랜섬 "


  상속권 논란에 대한 한바탕 말싸움이 오간 후, 여기에 종잡을 수 없는 랜섬이 갑자기 상대적 약세를 보이던 마르타에게 합류합니다. 아마도 이 시점부터 랜섬이 진범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이 있겠죠. 하지만 <나이브스 아웃>의 핵심은 범인에게 찍혀있지 않습니다. <나이브스 아웃>의 목표는 현란한 각본을 통해 이야기의 구도를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관객에게 추리물이 선사할 수 있는 유희의 어느 극단을 안겨주는 것에 있죠. 말하자면 <나이브스 아웃>은 (사실상 가짜 범인이지만) 범인을 공개하는 초반부터 관객에게 범인에 집중하지 말아 달라고 외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죠.

 

마르타를 기습하는 랜섬

  그리고 후반에 와서 똑똑한 인물로 나온 랜섬의 치밀한 계획은 왜 실패했을까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랜섬이 진 이유는 그가 인간의 선의 의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재미있는 교훈극이라고 생각하는데, 랜섬은 치밀하게 재산을 가져가기 위해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추리극을 만들죠. 그 반대편에 선 할런의 대리인 마르타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할런과의 오목 장면에서 봤듯이 아름다운 패턴을 생각했던 사람인 데다 과정을 선하게 살던 사람입니다. 게다가 자기의 맡은 바 직업에 충실하기도 했죠. 결국 머리를 써서 게임을 이기려 했던 사람(랜섬)과 그냥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려고 했던 사람(마르타)이 게임에서 부딪혀 마르타가 이기게 됩니다. 즉,  선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 패배하는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교훈극으로 볼 수 있죠.

 


 

p.s 


  영화의 각본이 진정 훌륭하게 느껴지는 대목은 여러 번의 구도 체인지를 형성하는 와중에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너무나도 효율적으로 오간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마르타&랜섬 vs 좌파 가족 vs 우파 가족. 이 구도에서 영화는 미스터리를 추가하여 신선한 서스펜스 구도 속에 미스터리 추리극의 고전적인 재미까지 가미하죠. 그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과연 블랑을 고용한 이는 누구일까, 블랑을 고용했다면 이 사건을 미리 예측한 이가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일까?, 그리고 마르타를 시종 협박해오는 미지의 인물은 과연 누구인가, 아마도 이 둘은 동일인물인 것인가 등등.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이브스 아웃>의 속편 <나이브스 아웃 2>에서 밝혀질 것 같습니다.
  이처럼 여러 번의 굴곡을 거친 영화는 탐정의 장광설이라는 탐정 추리극의 다소 고전적인 형식으로 극을 마무리합니다. 말하자면 상황과 공간의 고전적 설정을 현대의 배경을 통해 이색적인 전개로 신선하게 풀어내다가 끝내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마무리시키는 셈이죠. 그리고 영화 전반에 가득한 여러 사회 계급적인 모티브는 영화에 깊이감을 부여해 이 추리물의 짜릿한 재미가 휘발되지 않도록 제 역할을 다하죠. 이토록 치밀하고 흥미롭게 짜인 추리소설 한 편을 극장에서 본 것 같아 여운이 꽤 남네요.

 

한 줄 평가: 풍미가 넘쳐 여운이 남는 두 시간가량의 프랑스 풀코스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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