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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시 쉬었다 가세요"
The Good Movies/판타지

<경계선> _ '미운 오리 새끼'에서 그 오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by 브리즈B 2020. 3. 25.

 

 

 

< 경계선, 2019 >

 

감독: 알리 아바시

출연: 에바 멜란데르, 에로 밀로노프

장르: 판타지 / 스웨덴, 덴마크 / 로맨스, 강렬한, 범죄

 

출입국 세관 직원인 '티나'(에바 멜란데르)는

후각으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기묘한 능력과

남들과는 조금 다른 외모로

세상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수상한 짐을 든 남자

'보레'(에로 밀로노프)가 나타나고, 

그는 '티나' 자신도 몰랐던 

그녀의 특별한 모습을 일깨워주는데...

 


 

" 경계선 짚어보기 "


  <경계선>은 하나의 기이한 성인용 동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잊지 못할 정도로 이미지가 오래 남습니다. 가령 '미운 오리 새끼'라는 동화로 예를 들어보면 백조 새끼들은 검은 털을 가진 오리를 미워하며 소외시키려 하죠. 그저 아무렇지 않게 겉모습만으로 즉각적인 판단을 내려 미움을 쉽게 드러냅니다. 어른이 돼서 다시 읽어보면 백조들이 다른 이들을 미워하는 기준이 타당한지 의구심이 들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때로 일상 속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철저하게 '다수'에 속하기 위해 '소수'에 속한 친구들을 알게 모르게 기피합니다. 학교든 직장이든 사회적인 구조 안에서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죠. 반대로 소수의 무리에 속하게 되어 미움의 낙인이 찍히거나 견디기 어려운 수치심으로 힘들었을 사람들이 있죠. 영화 <경계선>은 사회 속의 수많은 '경계'로 인해 억압과 핍박을 받아야 했던 이들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더불어 '경계'라는 선을 지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차별을 해온 이들에게 반성의 기미를 유도합니다.

 


※ 주의 ※

※ 주의 ※

본 포스팅은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이며 

단순히 제 의견이 틀리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다소 부족하지만

다름을 근거로 한 냉정한 비판은 괜찮으며

본 리뷰에 앞서 영화 내용을 다룰 것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읽어주시기를 권장합니다.

 

" 인간과 이형, 본성과 이성 "


 

 

  영화가 시작하면 우리에게 첫 번째로 제시되는 생명체는 인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위에 놓인 곤충이죠. 그리고 그 상태로 카메라가 수직으로 올라가고 통상적인 미(美)의 기준에서 아름답다고 보기 힘든 누군가의 얼굴, 티나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 순간, 인간이 아닌 곤충과 분명 인간처럼 보이긴 하지만 꽤 생소한 얼굴의 티나를 연결 짓는 장면은 이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첫 번째 질문을 내던집니다. 미적 요소가 지나치게 결함 된 그녀, 혹은 그는 과연 인간인가? 관객의 입장에서 그런 질문을 가진 채 영화를 보다가, 중반부에 이르러 사실 영화의 첫 장면은 티나에게도 질문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오프닝 중, 곤충 한 마리를 손 위에 놓은 채 이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티나를, 우리는 그 순간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어느 시점이 지난 뒤 첫 장면을 다시 상기해보면, 그 당시 티나가 느낀 감정은 틀림없이 식욕의 감정이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합니다. '인간은 벌레를 먹지 않는다'라는 이성의 명제와 '나는 벌레를 먹고 싶다'라는 본성의 명제 사이에서 오프닝의 티나는 전자를 택합니다. 그 순간 그녀는 ‘나’라는 존재를 ‘인간’의 범주에 귀속시킨 셈이죠. 그렇게 영화의 오프닝은 티나의 괴상한 이미지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과 이형(異形)의 경계를 질문했고 티나로 하여금 이성과 본성 간의 충돌을 통해 인간과 이형 간의 존재론적 경계를 비춰줍니다.

 


 

" 그녀에게 놓인 두 가지 갈림길 "


후각으로 불법 유통을 검사하는 티나

  분명 티나는 인간이기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인간, 혹은 문명의 세계는 그녀를 은근 슬쩍 괴롭힙니다. 누군가는 그녀의 낯짝 앞에서 그녀의 외모를 대놓고 험담하고, 누군가는 마트에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또 누군가는 그녀를 경제적으로 착취하죠. 그런 가해가 이어지는 와중에 문명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자신의 본성이 불현듯 발현되어 티나는 혼란에 빠집니다. 자기 집에서 같이 동거하고 있는 '롤랜드'와 식사할 때 그녀는 곤충을 먹고 싶은 욕구를 애써 억누르며 영양제를 갈아 마시고 세면 할 때는 숲속의 호수로 가서 보통 인간이 하는 행동과 정반대의 태도를 취합니다. 그리고 더 뒤로 가서 그녀는 퇴근길에 곧 출산을 앞둔 한 부부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을 차에 태운 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숲속에서 노루 떼를 잠시 마주치죠. 여기서 심상치 않은 건 티나의 반응입니다. 앞서 부부를 마주쳤을 때 티나는 숲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남자에게 깜짝 놀라며 급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장면에서 노루 떼가 나오기 전에, 그녀는 한참 멀리서 정지하며 노루 떼가 지나갈 것을 미리 예측합니다.
  아무래도 이런 티나의 반응은 인간과 이형의 경계에서 후자의 길로 행하고 있는 그녀 본성의 흐름이 내포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국경에서 후각을 통해 불법 유통을 검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티나는 사실상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 경계에 해당하는 직무라 봐도 무방하죠. 다르게 보면 티나의 직업은 마약탐지견을 연상케 합니다. 그런 경계 사이에서 그녀의 본성은 인간의 반대편을 향하는 중이며 곧이어 이런 티나의 본성을 가속시킬 두 가지 사건이 등장합니다.

 

보레와 티나의 만남

  첫 번째는 '보레'와의 만남입니다. 감시대에서, 티나는 그를 멈춰 세웁니다. 앞서 티나의 능력이 선으로 제시되었기에 그 순간 관객은 다시 한 번 스스로 질문합니다. “그 순간 티나가 감지한 후각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티나는 과연 보레에게서 무슨 냄새를 맡았기에 그를 붙잡았을까요? 여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이를 전제하고 개인적으로 요약하자면 우선시되는 후각은 범죄를 앞둔 범죄자의 들뜬 복수심의 냄새입니다. 인간 종 전체를 혐오하는 보레가 국경을 이동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소아 범죄 때문이죠. 따라서 그는 국경을 건너는 순간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에게 테러를 가할 생각에 들떴을 것이고 이는 곧바로 티나에게 적발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적발된 뒤의 상황입니다. 보레를 임시로 잡아둔 공간에서, 그녀는 보레의 옷 냄새를 맡습니다. 그녀의 직무는 급변하는 인간의 감정을 후각의 형태로 전환시킨 뒤 해석하여 이를 통해 부정적 감정을 풍기는 이를 색출하는 것이죠. 따라서 그가 의심스럽다면 그의 옷 냄새를 맡을 것이 아니라 그를 유도 심문하여 그의 냄새를 맡아야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그녀는 그의 옷 향기를 맡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매혹되었기 때문이죠.

 

사랑을 나누는 티나와 보레

  나중에 티나가 보레와의 동거를 허락한 후, 보레는 자신의 못난 외모를 불평하는 티나에게 인간들의 생각은 신경 쓰지 말라며 은연중에 티나를 이형의 경계로 끌어들입니다. 문명과 자연의 경계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본성이 문명의 규칙 중 그 어느 것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한 바가 있죠. 하지만 보레가 초대한 트롤의 세계 속, 즉 자연의 세계에선 얘기가 달라집니다. 문명의 규칙이 무의미한 그 세계 속에서 그녀는 비로소 그토록 원하던 평범한 생명체로 거듭납니다. 그리고 마치 새로운 탄생을 자축하기라도 하듯 에로틱한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앞서 티나는 동거인이 섹스를 요구했을 때 이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짐작컨대 더러운 욕정의 향기만 가득한 인간의 냄새 때문이었겠죠. 반면에 티나는 보레와 격렬히 사랑을 나눕니다. 더 반전인 건, 티나가 남성의 성기를, 보레는 여성의 성기를 갖고 있죠. 인간들과 반대되는 티나와 보레의 에로틱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 관객의 성적 통념은 완전히 전복되고 정체가 긴가민가했던 티나와 보레는 이제 두 명의 트롤로 완전히 타자화됩니다. 그리고 타자화된 티나와 보레는 오로지 순도 100%의 사랑의 냄새만을 맡으며 사랑을 나눕니다.

 

  곧이어 두 번째는 티나의 직무 에피소드입니다. 뛰어난 선천적 능력 덕에 티나는 소아성범죄 검거 팀에 합류하여 일을 맡습니다. 그리고 티나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통해 범죄자들을 검거하는 데 성공하죠. 인간이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범죄 중 하나인 소아 성범죄의 진상을 목격하며 티나는 인간 세계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인간의 경계에서 마음을 돌립니다. 이 에피소드는 여기까진 티나에게 이롭죠. 이형의 경계로 떠나고 싶지만 발이 안 떨어지는 그녀에게 인간의 경계에서 벗어날 명분을 준 셈이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이 사건이 티나가 보레를 만난 첫 번째 사건과 엮이게 되면서 티나의 딜레마가 생겨납니다.
  보레가 소아 성범죄에 가담한다는 사실을 듣자 문명의 세계에서 학습한 그녀의 자아가 윤리적으로 반응합니다. 즉, 이성이 그녀의 발목을 잡습니다. 그녀가 문명에서 학습한 결과, 분명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아동에 대한 범죄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녀는 본성을 따라갔고 이제 스스로를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여기서 오프닝의 딜레마가 연장되며 변주됩니다. 앞선 1시간 정도는 영화가 본성이 이성을 결국 이기는 형태로 이야기를 진행했다면 이번엔 이성 측에서 본성이 쉽사리 이기지 못할 근거를 들고 온 셈입니다. 식욕의 본능과 인간다움의 이성 사이에서 후자를 택했다가 나중에 냉정한 이성 대신에 가슴 뛰는 본성을 택한 그녀는 이성의 윤리와 도덕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건 앞에서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타자화된 티나는 다시 우리가 몰입해야 할 주인공의 위치로 회귀하고 성범죄에 가담한 보레는 영원히 타자의 위치에 박제됩니다. 

 


 

" 생명의 도리를 지키는 게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


  여기서 잠깐 보레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그는 죄 없는 인간들을 괴롭히는가. 보레에 말에 따르면 인간이 자신에게 먼저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이 말인즉슨 보레는 죄 있는 인간이나 죄 없는 인간이나 다 한 통속으로 보는, 정확히 말하면 개체의 결함을 종의 결함으로 확대 해석하는 인물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이나 생각할 가당치도 않은 신념으로 보이지만 흥미로운 건 티나 역시 이와 비슷한 태도를 취한 사례가 있다는 것이죠. 보레에게 자신의 정체에 관한 진실을 들은 뒤 그동안 자신을 속여 온 양아버지에 분노한 티나는 그를 찾아간 뒤 집으로 돌아와 롤랜드를 매정하게 내쫓습니다. 평소에 경제적으로 빌붙는 그이긴 하지만 그 순간 티나가 그를 내쫓을 그럴듯한 명분은 없죠. 그 순간 티나는 단순히 그가 자신을 속인 양아버지와 같은 인간이기에 내쫓은 것입니다. 티나 역시 개체의 악행을 종의 악행으로 일반화한 셈이죠. 이는 보통사람의 상식선에서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사고방식입니다. 하지만 티나는 트롤이고 개체를 종으로 확대 해석하는 사고 역시 트롤들 고유의 특징일 수도 있죠. 
  즉, 이번엔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아동에게 성범죄를 가하면 안 된다는 금기가 세워진 것은 그런 끔찍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죠. 문명의 이성은 성범죄자에 해당되는 악한 개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되 다른 선한 개체를 보호하기 위해 법의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개체의 악을 종의 악으로 오해하지 않게 말이죠. 이와 반대로 트롤들의 본성은 악한 개체의 존재를 곧 종의 악함으로 해석합니다. 극의 말미에 티나가 그토록 괴로워하는 까닭은 본성이 내재된 채 인간의 이성을 수십 년간 학습해왔기 때문입니다. 또 한 번 본성과 이성이 충돌한 이제, 그녀는 어찌해야 할지 선택을 내려야 합니다.

 

트롤 아기를 들어올리는 티나

  일찌감치 인간을 배척하며 트롤이라는 자아를 확립한 보레는 변화할 가망이 보이지 않죠. 중요한 건 티나입니다. 그녀에게 절박하게 요구되는 건 본성과 이성이 적절히 중재된 절충안입니다. 엔딩에 이르자 거짓말처럼 그런 결말이 그녀에게 선물처럼 주어지죠. 갑작스레 마주한 트롤 아기에게 곤충을 먹이며 울음을 그치게 하는 그녀의 행위는 아이에게 식욕이란 본성을 충족시켜주며 동시에 흐느끼는 아이의 눈물을 멈추게 함으로써 아동 범죄에 조금이나마 연루되었던 자신의 윤리적 죄책감을 덜어주기에 본성과 이성 사이의 밸런스를 유지합니다. 관객에 따라선 너무 갑작스레 떨어지는 기적과도 같은 결말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는 그런 기적을 누릴 자격이 충분합니다.
  영화는 답을 정하지 않죠. 이성과 본성 사이에서 그 어느 것이 옳다고 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이성과 본성 사이에서 윤리적 문제가 발생했을 시, 이를 깊게 숙고해볼 필요는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명확한 답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세계에 대한 그런 진지한 고민과 숙고 그 자체가 윤리적인 것이 아니겠냐고 영화는 되묻습니다. 이성과 본성 사이에 끼인 채 어떤 합리적인 판단도 내리지 못한 티나가 마지막에 기적과도 같은 엔딩을 선물 받은 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어찌할 수 없는 경계 속에서 그녀는 최선을 다했기에 충분히 윤리적이었고 아름다웠습니다. 통념을 뒤집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 그리고 쉽게 답하지 못할 질문을 하는 것이 예술의 본분이라면, <경계선>은 이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수행하였습니다.

 

한 줄 평가: 인간들과 다르기 때문에 외롭고, 동시에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도 괴물도 아닌 그 경계선 위의 슬프지만 근원적인 외로움을 끝끝내 긍정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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